[천자 칼럼] 경의선 책거리
경의선 책거리는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6번출구에서 와우교까지 이어지는 250m 길이의 테마 거리다. 옛 철로를 걷어낸 자리에 녹지 공간을 조성하고 정조 시대의 책가도(冊架圖) 정신을 입혔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설치작품 ‘책 읽는 여자’와 ‘기타 치는 남자’다. 책과 음악의 향기가 넘치는 ‘홍대 문화’의 상징물이다.

이 거리에서는 ‘312일간 저자를 만나는 행사’가 매주 월요일(휴관)을 제외한 화~일요일 열린다. 출판사와 인쇄소 4000여 곳이 몰려 있는 ‘문화특구’답다. 열차 모양의 책방들과 ‘시민이 사랑하는 책 100선’이 새겨진 조형물, 옛 철도역을 재현한 미니 플랫폼도 눈길을 끈다. 공항철도역까지 연결돼 있어 개장 1년 만에 42만여 명이 다녀갔다.

며칠 전부터는 야외 계단, 와우교, 건물 옆면이 윤동주 시인의 시구로 뒤덮였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동주는 이곳과 인연이 많다. 스물한 살 때 연희전문(현 연세대)에 입학한 그는 기숙사에서 여기까지 산책을 다니곤 했다. 그때는 개울 위로 작은 다리들이 놓여 있다고 해서 ‘잔다리 마을’로 불렸다. 한자로는 ‘세교리(細橋里)’라고 했다.

옛 경의선의 세교리역과 서강역 사이에 자리한 와우고가차도 아래에 ‘책거리역’ 간판이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갈 때 울리던 ‘땡땡’ 소리를 딴 ‘땡땡거리’가 있다. 철길을 건너려는 가족과 차단기를 관리하는 역무원의 조각상이 정겹게 다가온다.

와우고가차도 위로 올라가면 책거리를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어서 밤마다 연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낮에는 와우교 게시판에 적힌 ‘오늘 당신과 함께할 책은 무엇입니까?’라는 문구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번 주말엔 대규모 가을 축제가 열린다. 29일까지 계속되는 ‘저자데이 책축제’에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인 건축가 유현준 씨 등 15명의 강연과 야외 낭송회, 음악공연 등 49개 문화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바닥에 새겨진 키케로의 멋진 문장도 발견할 수 있다. ‘책이 없는 집은 문이 없는 것과 같고,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시간이 남으면 길 건너 홍대입구역 3번출구 쪽의 연남동 경의선숲길도 함께 즐겨보자.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닮았다 해서 ‘연트럴 파크’로 불리는 이곳의 가을 은행나무길이 장관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