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같은 행동경제학은 현실경제를 꿰뚫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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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본 행동경제학
경제주체는 덜 똑똑하고 의지력이 약한 심슨 같은 사람들
경제주체는 덜 똑똑하고 의지력이 약한 심슨 같은 사람들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행동경제학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쌓은 리처드 세일러 미 시카고대 교수에게 돌아가자 행동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경제학에 접목시켜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것과 다른 현상들을 설명한다.
전통 경제학에서 가정한 인간은 완벽한 합리성을 가지고, 완전 정보 하에 자기 이익만을 극대화 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며, 생애 전체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현재 만족감을 높이는 것을 선호하며, 자기 이익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행복도 감안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로서 보다 현실성 있는 인간을 가정한다.
따라서 세일러 교수는 전통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경제주체를 Econ이라고 부르고, 행동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을 Human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Econ은 영화 스타트랙의 주인공인 이성적이고 냉철한 스팍(spock)에 비유하고, Human은 미국의 TV 시리즈 “The Simpsons”의 주인공인 덜 똑똑하고 의지력이 약하며 다른 이들도 보살피는 착한 호머 심슨(Homer Simpson)에 비유했다.
저축있어도 신용카드 대출받아 고리에 허덕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 자기통제 능력의 부족, 사회적 선호로 인해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바와 다른 결과들이 나타나는 행동경제학의 사례들은 주위에서 적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통경제학에서 개인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의 한도내에서 효용을 극대화 하는 소비를 결정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개인은 전체 예산을 고려하기 보다는, 항목에 따라 예산을 나누고 각각의 계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소비량을 결정한다.
즉, 예산을 월세, 공과금 , 휴가비, 의류비 등 여러개의 주머니(계정)에 별도로 나누어 놓고, 월세가 모자라더라도 휴가비 주머니에 있는 돈을 끌어다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대출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을 세일러 교수는 심적 계정(mental accounting)이라고 부르고,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신용카드 대금을 갚아야 할 때 잔고가 부족한 경우가 있다.
신용카드는 연체 이자가 높기 때문에, 저축한 돈이 있다면 이 돈으로 신용카드 대금부터 갚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정기예금에 저축이 있더라도 이를 해지하여 신용카드 대금을 갚기 보다는 비용이 더 큰 방식(신용카드 대출 등)에 의존하곤 한다. 이 역시 저축 계좌와 빚 계좌를 별도로 운영하는 심적 계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적 계정에서 중요한 것은 계정마다 다른 준거점(reference point)이다. 개인은 어떤 준거점과 비교해서 소비를 결정하게 된다. 준거점은 과거에 구입했던 가격일수도 있고, 인터넷 검색에서 본 인터넷 최저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전통 경제학에서는 물건에 대한 가치가 가격을 상회하면 소비자 잉여가 발생하므로 구입을 하게 되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소비자 잉여가 발생하더라도, 그 가격이 준거점(예를 들면, 인터넷 검색에서 보여준 최저가)보다 높으면 구입을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자기통제 부족으로 현재만 중시하는 행동파
자기통제의 부족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계획자-행동자 모형(planner-doer model)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 하는 계획자(planner)로서의 자아와 현재만 중시하는 행동자(doer)로서의 자아 양면이 있다.
예를 들면, 장기적 관점에서는 운동을 해서 건강을 유지하는게 유익하지만, 오늘은 운동을 하기 싫으니 자꾸 미루고 다이어트는 늘 내일부터를 외치게 된다. 음주, 흡연, 비만과 같은 건강을 해치는 행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축도 마찬가지로 은퇴 후 적절한 생활 수준 유지를 위해서는 저축을 착실히 해야 하는데, 오늘의 행동자는 현재 소비를 늘리고 싶어 한다. 이렇게 현재의 행복추구가 장기적 관점에서의 후생 극대화를 저해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통제가 어려운 것을 감안하여 단기적으로 행동자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 대비 저축계정을 만들어 저축을 한다거나,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적금을 넣는다거나, 음주, 흡연, 과식을 하면 신체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유발하는 약을 개발한다거나 하는 것이 단기적 행동자 통제 방식의 좋은 예이다.
폭우에도 우산 가격 못올리고 품절
사회적 선호 현상은 공정성에 대한 선호로 설명한다. 전통 경제학의 수요-공급 이론에 따르면 시장에 수요나 공급 충격이 나타나면 물건의 가격이나 임금이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 경제에서 보면 가격이나 임금의 조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품의 품귀현상이나 실업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폭우가 쏟아져서 우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을 때, 전통 경제학에서는 균형 가격 상승으로 수급이 일치하게 되겠지만, 현실에서는 우산 가격을 올리면 상점 주인이 비난을 받기 때문에 우산 가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품절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기침체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임금을 삭감해야 하는데, 근로자들은 임금삭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임금을 유지하되 고용자 수를 줄이는 정리해고 방식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상호관계에서 있어서도 공정성은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전통경제학에서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존재이지만, 행동경제학에서 개인은 타인의 이익을 배려하여 행동하고, 공정성을 선호하며, 이를 위반시 자신의 이익이 감소하더라도 처벌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복권판매도 행동경제학 활용해 과대 포장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행동경제학적 툴은 마켓팅 기법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실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out-of-pocket costs)은 손실로 인식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반해, 기회비용은 발생할 수 있었던 이득(foregone gains)으로 인식하여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새 차 가격이 $200 인상되었을 때, 정가 인상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할인이 없어졌다고 하면 덜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또 다른 예로 가게에서 신용카드 수수료를 생각하여 신용카드 사용자에게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싶은데, 정상 가격에서 신용카드 수수료를 더해서 내는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현금 사용시 할인해 준다고 표현한다.
복권 판매시 소수의 당첨자를 과대포장하여 선전하고 수많은 비당첨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는 것이라든지, 하나 사면 하나 더 준다는 1+1 판매방식도 소비자의 심리를 활용하여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는 방법이다. 즉, 행동경제학에서는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구조화(framing)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2015년 발간한 저서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Misbehaving)』에서 소개한 구조화 효과(framing effects)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또 다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세일러 교수가 코넬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MBA 수업에서 첫 중간고사를 치러야 했다.
변별력이 있도록 시험문제를 출제하였고, 중간고사의 반평균은 100점 만점에 72점이었다. 어차피 상대평가라서 점수 자체는 의미가 없다고 미리 설명했는데도 학생들은 시험문제가 너무 어렵고 평균이 낮다며 불만이 높았다.
그래서 세일러 교수는 그 다음 기말시험에서는 총점을 100점이 아닌 137점으로 만들고, 조금 더 어렵게 출제하였다. 기말고사의 반 평균은 96점, 퍼센트로 환산하면 70%로 중간고사 평균인 72%보다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얻은 시험점수에 모두 만족해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평균이 72%인 중간고사보다 70%인 기말고사에 더 불만이 있어야 할 텐데, 평균 점수 자체가 높고(대부분이 90점대), 일부는 10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으며, 머릿속으로 137점을 퍼센트로 환산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지 학생들은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넛지>가 행동경제학 대중화에 결정적 기여
행동경제학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2008년 발간된 저서 『넛지(Nudge)』를 통해서이다. 넛지라는 직역하면‘팔꿈치로 살짝 옆구리 찌르기, 주위를 환기시키기’라는 뜻이지만, 세일러 교수와 캐스 선스타인 시카고대 법학과 교수가 공저한 저서에서는 자유주의적 간섭주의(libertarian paternalism), 즉,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정부는 장기적 관점에서 개인의 후생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개인의 선택을 유도하되 (간섭주의 부분), 개인의 선택을 강제하거나 선택의 종류를 제한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부분).자유주의적 간섭주의의 핵심은 초기 디폴트 옵션을 잘 설계하여 제시함으로써 개인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퇴직연금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자동가입 정책이다. 개인의 은퇴 후 생활에 대비하기 위해 퇴직연금 가입을 늘리고 저축액을 늘려야 하는데, 이를 돕기 위해 미국 정부는 스마트 프로그램 가입을 장려하였다.
스마트 프로그램은 근로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이상, 퇴직연금에 가입 및 임금인상에 연금기여율 인상이 연동되는 프로그램에 자동가입 되는 것이다. 이는 퇴직연금 가입 및 저축률 인상을 원하는 사람이 서류를 작성하여 신청하는 것(의사표현을 해야지만 가입이 승인되는 방식)보다 퇴직연금 가입률을 크게 제고시켰다. 그리고 개인은 현상태를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가입된 프로그램에서 탈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은 마켓팅에서도 흔히 활용된다. TV의 유선 채널을 한달간 무료 제공하고 한달 후 원치 않으면 직접 전화해서 해지 의사만 밝히면 바로 해지도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그러나 인간의 특성상,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전화 한 통, 서류 한 장이라는 작은 비용을 치르는 것도 귀찮아 하기 때문에 마켓팅 트릭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한 때는 주류 경제학의 이단자
한 때 행동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을 부인하는, 주류 경제학의 이단자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행동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을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반영하여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필드로 성장해 왔다.
세일러 교수가 구글에서 했던 한 강연에서“행동 경제학이란 어구는 동의어 반복이다. 즉,‘행동’은 불필요한 수식어이다. 경제학에서 인간의 행동이 포함되지 않는 경제학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사실 경제학은 미시, 거시, 계량, 노동, 산업조직, 보건, 교육, 공공, 국제 등 여러 분야로 구분하긴 하지만, 이 중 인간의 행동이 포함되지 않은 분야는 하나도 없다. 따라서 분석의 편의를 위해 행동경제학적 가정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가정들은 전통 경제학의 다른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연구자의 선호에 따라 선택가능한 가정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즉, 전통 경제학과 행동 경제학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한 설계만 잘 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정책효과가 큰 정책적 툴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이은경 연구위원 >
전통 경제학에서 가정한 인간은 완벽한 합리성을 가지고, 완전 정보 하에 자기 이익만을 극대화 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며, 생애 전체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현재 만족감을 높이는 것을 선호하며, 자기 이익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행복도 감안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로서 보다 현실성 있는 인간을 가정한다.
따라서 세일러 교수는 전통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경제주체를 Econ이라고 부르고, 행동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을 Human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Econ은 영화 스타트랙의 주인공인 이성적이고 냉철한 스팍(spock)에 비유하고, Human은 미국의 TV 시리즈 “The Simpsons”의 주인공인 덜 똑똑하고 의지력이 약하며 다른 이들도 보살피는 착한 호머 심슨(Homer Simpson)에 비유했다.
저축있어도 신용카드 대출받아 고리에 허덕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 자기통제 능력의 부족, 사회적 선호로 인해 전통 경제학에서 예측하는 바와 다른 결과들이 나타나는 행동경제학의 사례들은 주위에서 적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통경제학에서 개인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의 한도내에서 효용을 극대화 하는 소비를 결정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개인은 전체 예산을 고려하기 보다는, 항목에 따라 예산을 나누고 각각의 계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소비량을 결정한다.
즉, 예산을 월세, 공과금 , 휴가비, 의류비 등 여러개의 주머니(계정)에 별도로 나누어 놓고, 월세가 모자라더라도 휴가비 주머니에 있는 돈을 끌어다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대출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을 세일러 교수는 심적 계정(mental accounting)이라고 부르고,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신용카드 대금을 갚아야 할 때 잔고가 부족한 경우가 있다.
신용카드는 연체 이자가 높기 때문에, 저축한 돈이 있다면 이 돈으로 신용카드 대금부터 갚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정기예금에 저축이 있더라도 이를 해지하여 신용카드 대금을 갚기 보다는 비용이 더 큰 방식(신용카드 대출 등)에 의존하곤 한다. 이 역시 저축 계좌와 빚 계좌를 별도로 운영하는 심적 계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적 계정에서 중요한 것은 계정마다 다른 준거점(reference point)이다. 개인은 어떤 준거점과 비교해서 소비를 결정하게 된다. 준거점은 과거에 구입했던 가격일수도 있고, 인터넷 검색에서 본 인터넷 최저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전통 경제학에서는 물건에 대한 가치가 가격을 상회하면 소비자 잉여가 발생하므로 구입을 하게 되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소비자 잉여가 발생하더라도, 그 가격이 준거점(예를 들면, 인터넷 검색에서 보여준 최저가)보다 높으면 구입을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자기통제 부족으로 현재만 중시하는 행동파
자기통제의 부족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계획자-행동자 모형(planner-doer model)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 하는 계획자(planner)로서의 자아와 현재만 중시하는 행동자(doer)로서의 자아 양면이 있다.
예를 들면, 장기적 관점에서는 운동을 해서 건강을 유지하는게 유익하지만, 오늘은 운동을 하기 싫으니 자꾸 미루고 다이어트는 늘 내일부터를 외치게 된다. 음주, 흡연, 비만과 같은 건강을 해치는 행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축도 마찬가지로 은퇴 후 적절한 생활 수준 유지를 위해서는 저축을 착실히 해야 하는데, 오늘의 행동자는 현재 소비를 늘리고 싶어 한다. 이렇게 현재의 행복추구가 장기적 관점에서의 후생 극대화를 저해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통제가 어려운 것을 감안하여 단기적으로 행동자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 대비 저축계정을 만들어 저축을 한다거나,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적금을 넣는다거나, 음주, 흡연, 과식을 하면 신체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유발하는 약을 개발한다거나 하는 것이 단기적 행동자 통제 방식의 좋은 예이다.
폭우에도 우산 가격 못올리고 품절
사회적 선호 현상은 공정성에 대한 선호로 설명한다. 전통 경제학의 수요-공급 이론에 따르면 시장에 수요나 공급 충격이 나타나면 물건의 가격이나 임금이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 경제에서 보면 가격이나 임금의 조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품의 품귀현상이나 실업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폭우가 쏟아져서 우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을 때, 전통 경제학에서는 균형 가격 상승으로 수급이 일치하게 되겠지만, 현실에서는 우산 가격을 올리면 상점 주인이 비난을 받기 때문에 우산 가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품절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기침체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임금을 삭감해야 하는데, 근로자들은 임금삭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임금을 유지하되 고용자 수를 줄이는 정리해고 방식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상호관계에서 있어서도 공정성은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전통경제학에서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존재이지만, 행동경제학에서 개인은 타인의 이익을 배려하여 행동하고, 공정성을 선호하며, 이를 위반시 자신의 이익이 감소하더라도 처벌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복권판매도 행동경제학 활용해 과대 포장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행동경제학적 툴은 마켓팅 기법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실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out-of-pocket costs)은 손실로 인식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반해, 기회비용은 발생할 수 있었던 이득(foregone gains)으로 인식하여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새 차 가격이 $200 인상되었을 때, 정가 인상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할인이 없어졌다고 하면 덜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또 다른 예로 가게에서 신용카드 수수료를 생각하여 신용카드 사용자에게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싶은데, 정상 가격에서 신용카드 수수료를 더해서 내는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현금 사용시 할인해 준다고 표현한다.
복권 판매시 소수의 당첨자를 과대포장하여 선전하고 수많은 비당첨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는 것이라든지, 하나 사면 하나 더 준다는 1+1 판매방식도 소비자의 심리를 활용하여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는 방법이다. 즉, 행동경제학에서는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구조화(framing)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2015년 발간한 저서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Misbehaving)』에서 소개한 구조화 효과(framing effects)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또 다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세일러 교수가 코넬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MBA 수업에서 첫 중간고사를 치러야 했다.
변별력이 있도록 시험문제를 출제하였고, 중간고사의 반평균은 100점 만점에 72점이었다. 어차피 상대평가라서 점수 자체는 의미가 없다고 미리 설명했는데도 학생들은 시험문제가 너무 어렵고 평균이 낮다며 불만이 높았다.
그래서 세일러 교수는 그 다음 기말시험에서는 총점을 100점이 아닌 137점으로 만들고, 조금 더 어렵게 출제하였다. 기말고사의 반 평균은 96점, 퍼센트로 환산하면 70%로 중간고사 평균인 72%보다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얻은 시험점수에 모두 만족해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평균이 72%인 중간고사보다 70%인 기말고사에 더 불만이 있어야 할 텐데, 평균 점수 자체가 높고(대부분이 90점대), 일부는 10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으며, 머릿속으로 137점을 퍼센트로 환산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지 학생들은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넛지>가 행동경제학 대중화에 결정적 기여
행동경제학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2008년 발간된 저서 『넛지(Nudge)』를 통해서이다. 넛지라는 직역하면‘팔꿈치로 살짝 옆구리 찌르기, 주위를 환기시키기’라는 뜻이지만, 세일러 교수와 캐스 선스타인 시카고대 법학과 교수가 공저한 저서에서는 자유주의적 간섭주의(libertarian paternalism), 즉,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정부는 장기적 관점에서 개인의 후생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개인의 선택을 유도하되 (간섭주의 부분), 개인의 선택을 강제하거나 선택의 종류를 제한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부분).자유주의적 간섭주의의 핵심은 초기 디폴트 옵션을 잘 설계하여 제시함으로써 개인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퇴직연금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자동가입 정책이다. 개인의 은퇴 후 생활에 대비하기 위해 퇴직연금 가입을 늘리고 저축액을 늘려야 하는데, 이를 돕기 위해 미국 정부는 스마트 프로그램 가입을 장려하였다.
스마트 프로그램은 근로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이상, 퇴직연금에 가입 및 임금인상에 연금기여율 인상이 연동되는 프로그램에 자동가입 되는 것이다. 이는 퇴직연금 가입 및 저축률 인상을 원하는 사람이 서류를 작성하여 신청하는 것(의사표현을 해야지만 가입이 승인되는 방식)보다 퇴직연금 가입률을 크게 제고시켰다. 그리고 개인은 현상태를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가입된 프로그램에서 탈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은 마켓팅에서도 흔히 활용된다. TV의 유선 채널을 한달간 무료 제공하고 한달 후 원치 않으면 직접 전화해서 해지 의사만 밝히면 바로 해지도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그러나 인간의 특성상,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전화 한 통, 서류 한 장이라는 작은 비용을 치르는 것도 귀찮아 하기 때문에 마켓팅 트릭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한 때는 주류 경제학의 이단자
한 때 행동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을 부인하는, 주류 경제학의 이단자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행동경제학은 전통 경제학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을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반영하여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필드로 성장해 왔다.
세일러 교수가 구글에서 했던 한 강연에서“행동 경제학이란 어구는 동의어 반복이다. 즉,‘행동’은 불필요한 수식어이다. 경제학에서 인간의 행동이 포함되지 않는 경제학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사실 경제학은 미시, 거시, 계량, 노동, 산업조직, 보건, 교육, 공공, 국제 등 여러 분야로 구분하긴 하지만, 이 중 인간의 행동이 포함되지 않은 분야는 하나도 없다. 따라서 분석의 편의를 위해 행동경제학적 가정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가정들은 전통 경제학의 다른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연구자의 선호에 따라 선택가능한 가정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즉, 전통 경제학과 행동 경제학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한 설계만 잘 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정책효과가 큰 정책적 툴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이은경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