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일본서도 기초학문 박사 취업은 '빙하기'
일본은 기초학문 강국입니다. 올해는 자연과학 계열 노벨상에서 일본인이 수상하지 못했지만 이전 3년간 연속으로 일본인이 노벨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21세기 들어선 미국 다음으로 과학분야 노벨상을 많이 탄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본에서도 매년 가을 노벨상을 두고 전국이 떠들석한 모습이 과거의 유물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기초학문 연구 인기가 떨어지면서 지원자도 줄고, 연구자의 수준도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 이유라고 합니다.

아사히신문이 전한 일본 사립대학 약학부 교수들의 자조적인 표현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장이 없지는 않겠지만 ‘심장과 간의 위치를 모르고’ ‘동맥과 정맥이 무엇인지 모르고’ 약대에 들어오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입시 과목에 ‘생물’이 필수로 포함된 약학계 대학이 적어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단지 신입생들의 수준이 교수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본 내 과학계에서도 단기성과를 중시하는 풍조가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쿄대의 경우, 석사에서 박사로 진학하는 비율은 2001년 42%에서 2016년 26%로 반 토막 가까이 됐습니다. 일본 학계의 경우엔 한국에 비해 유학보다 국내 박사를 선호하는 풍조가 높은 만큼 국내 박사 진학 비율 감소는 박사를 지원하는 인원 감소로 봐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박사의 인기가 떨어진 배경에는 젊은 연구자의 고용 불안정이 크다고 합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신분이 안정되지 않은 기간제(한국의 시간강사에 해당)로 근무하는 경우가 도쿄대의 경우, 전체의 60%가 넘는다고 합니다. 아사히신문은 기초학문 박사의 취업이 ‘빙하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세계 과학계에서 차지하는 일본 과학계의 위상도 하락하고 있습니다. 문부과학성 산하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가 2013~2015년 발표된 자연과학 논문 건수를 집계한 결과, 일본이 발표한 논문은 6만4013건으로 10년 전인 2003~2005년 조사 때의 6만7888건보다 6% 줄었다고 합니다.

10년마다 진행되는 이 조사 결과, 일본은 1993~1995년 조사와 2003~2005년 조사 때 논문 건수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4위로 밀려났다고 합니다.

앞서 올 3월에는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일본의 과학 논문수가 줄어들고 있어 세계 과학계의 ‘엘리트’라는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68개 주요 과학학술지에 게재된 일본 논문수가 2012년 5212건에서 2016년 4779건으로 433건 줄었다는 게 근거였습니다. 일본 논문이 전체 중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9.2%에서 8.6%로 낮아졌다는데요. 전 세계 논문수가 80% 늘어날 때 일본만 유독 논문이 줄어 충격이 컸다고 합니다.

이 같은 상황이 확산되면서 대학원에서 기초 연구를 심화하기 보다는 응용 연구를 중심으로 민간 기업에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날 것으로 일본 사회도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한국은 일본의 잇따른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을 무척 부러워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은 과거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 오늘 나타난 것일 뿐 현재의 실제 발전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게 일본측 시각입니다. 기초 학문 분야 지원자가 줄고, 전망이 밝지 않은 것을 고민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