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방영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SBS 드라마 '모래시계'가 22년만에 뮤지컬로 부활한다.
당시 TV채널은 KBS, MBC, SBS 등 3~5개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래시계'는 64.5%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온 국민을 TV 앞으로 끌어 모았다. 방영시간만 되면 거리가 한산해진다고 해서 '귀가시계'라고 불릴 정도였다.
태수(최민수)와 우석(박상원)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 사이지만 우석이 법대에 진학한 반면 태수는 빨치산 아버지의 전력으로 인생이 꼬이면서 조폭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우석은 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만난 혜린(고현정)을 만나 태수를 소개시키고 태수와 혜린은 사랑에 빠진다. 이 드라마를 통해 주인공들은 물론 묵묵하게 고현정 옆을 지키던 보디가드 재희역의 이정재도 톱스타 반열에 합류하게 된다.
혼란과 격변의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안타깝게 얽혀버린 세 주인공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엇갈린 운명과 선택을 그린 작품 '모래시계'를 통해 감독과 배우들이 현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시 중구 충무아트센터 컨벤션홀에서 뮤지컬 ‘모래시계’의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조광화 연출과 김문정 음악감독을 비롯해 주연배우 김우형, 신성록, 한지상, 조정은, 김지현, 장은아, 박건형, 최재웅, 박성환, 강홍석, 김산호, 손동운, 이호원 등 배우들이 참석했다.
조광화 연출은이날 제작발표회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물론 젊은 세대들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서"24부작의 미니시리즈를 압축하면서 징검다리는 최대한 살리고 세 청년의 만남, 헤어짐,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방영당시 드라마 인기만큼이나 큰 사랑을 받았던 모래시계 OST '백학'의 잔상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김문정 음악감독은 "1990년대에 드라마 모래시계가 사랑받는데 큰 일조를 했던 것이 OST 뮤직이라고 익히 잘 알고 계실 것이다"라면서 "그때 줬던 음악적인 정서와 서정적 멜로디를 배제하고 가기는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오상준 작곡가의 깊이 있는 멜로디가 배우들의 입을 통해서 관객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폭력조직 중간 보스에서 카지노 사업의 대부로 성장하는 ‘태수’ 역을 맡은 배우들은 가장 관심을 끌었다.
김우형은 발탁 소감에 대해 "중학교 2학년 사춘기로 방황하던 때 이 드라마를 통해 배우의 꿈을 꾸게 됐다"면서 "사랑했던 드라마를 어떻게 뮤지컬로 표현할 수 있을지 기대감이 크다. 운명과도 같은 작품이니만큼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신성록은 "마침 최민수 선배님과 드라마를 하고 있는데 뮤지컬 제의를 받아서 신기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태수의 잔상이 대한민국 온 국민에게 있을 텐데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걱정됐는데 최민수 선배님이 "그냥 너로 해"라고 조언해줬다. 공연 보러 온다 하셨는데 제 공연을 보는 가장 두려운 상대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지상은 출연 계기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제가 어떻게 최민수 선배님 역할을 해요?"라고 반문해 좌중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어 "이렇게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며칠간 고민하며 쉽게 결정하지 못했지만 드라마를 다시 보다 방황하는 태수의 고등학생 모습을 보고 결정했다"고 재치있게 말하면서 "태수 만의 순수함 그 만의 방황, 고민하는 모습들이 고등학생 때 저의 모습과 닮았다. 도전에 '도'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렐 정도로 새로운 모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태수 역을 흔쾌히 맡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뮤지컬로 재탄생된 '모래시계'는 이밖에도 원작의 캐릭터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은다. 카지노 대부 윤재용 회장의 외동딸이자 정식 후계자 ‘혜린’ 역은 배우 조정은, 김지현, 장은아가 함께한다.
젊은 고현정과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최민수 선배님 못지 않게 고현정 선배님이라는 큰 산을 지고 있다" "원작이 너무 훌륭해서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무대화시킬 수 있을까, 그 부담을 굳이 안고 가야할까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태수의 절친한 친구이자 굳건한 신념을 가진 서울중앙지검 검사인 ‘우석’ 역은 배우 박건형, 강필석, 최재웅이 맡았다.
주인공들의 삶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핵심 주변 인물의 캐스팅 역시 주목할 만하다. 야망을 위해 배신을 일삼는 태수의 친구 ‘종도’ 역은 배우 박성환, 강홍석이 맡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묵묵히 바라보며 지켜주는 경호원 ‘재희’ 역은 배우 김산호와 그룹 하이라이트의 손동운, 최근 인피티트 탈퇴 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호원이 캐스팅됐다.
뮤지컬 꿈나무라고 할 수 있는 손동운과 이호원은 "선배들의 좋은 점을 배워 발전하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 뮤지컬 장르에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겨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밖에 서부호텔 카지노의 최대 주주이자 혜린의 아버지 ‘윤회장’ 역은 배우 송영창과 손종학이 함께한다. 정계와 재계를 연결하는 정보기관의 실무 책임자 ‘도식’ 역은 배우 이정열과 성기윤이 연기한다. 이 외에도 26명의 앙상블 배우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며 드라마에 풍성함을 더한다.
조광화 연출은 "역사란 ‘현재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원작 송지나 작가는 작품의 주제를 ‘힘’으로 잡았지만 저는 그 부분에 한가지 추가해 잘못된 힘의 시대가 청년들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를 표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그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너무나 거칠어 청년을 배려하지 못하고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쓰러졌지만 누군가는 싸웠고 누군가는 살아남아 세상을 조금은 바꾸어 놓았다. 지금도 그러길 바라는 청년들과 만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모래시계' 속 시대배경과 사건은 1978년 동일방직 사건, 1979년 부마 민주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삼청교육대 설치 등 다양하다. 특히 1993년 암흑과와 카지노 업계를 장악했던 정덕진, 정덕일 형제와 정치권, 검찰, 정보기관 인사들이 천문학적 뇌물을 수수하다 구속된 '슬롯머신 비리 사건'의 담당검사인 홍준표가 이 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모래시계'의 소재가 됐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와 SBS 공동 제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대형 창작 뮤지컬 '모래시계'는 오는 12월 5일부터 내년 2월 1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