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달성한 삼성, 위기의 시작일지 모른다"
32년간 다닌 회사를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로 성장시킨 최고경영자(CEO)의 마지막 화두는 ‘위기’와 ‘혁신’이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은 1일 경기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삼성전자 창립 48주년 행사에서 “어쩌면 1위를 달성한 지금이 위기의 시작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일부 사업의 성장 둔화, 신성장동력 확보 지연 등 많은 불안요소를 지니고 있다”며 “과거 수많은 1위 기업이 현실에 안주하며 한순간에 무너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가올 10년은 사회 및 인구구조, 기술혁신 등에서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며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산업이 급변할 것”이라며 “과감한 도전과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적 경영체질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반도체·부품(DS)부문 대표와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에서 물러났으나 삼성전자 등기 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은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3월까지 유지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대표해 다수의 임직원 앞에서 발언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기념식에는 전날 소비자가전(CE)부문 대표직을 내려놓은 윤부근 사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임직원 4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달부터 권 부회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의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혁신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임직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1위가 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게 1위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항상 변화의 조짐을 찾아 경쟁사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 14조원, 3분기에 14조53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사상 최고 실적을 잇달아 경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권 부회장이 위기를 강조하는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가운데 투자 경영전략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미약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날 주요 사업부문 대표를 모두 교체한 삼성전자는 이르면 2일 추가 사장단 인사를 한다.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등 다른 계열사도 다음주 주요 경영진을 교체하는 인사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계 관계자는 “실적이 좋을 때 위기를 경계하는 것은 삼성 특유의 경계심에 가깝다”며 “하지만 이번 기회에 괄목할 만한 혁신이 없으면 미래 생존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것이 회사의 전반적인 공감대”라고 전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