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업 경영까지 코치하는 공정위원장
“대기업 최고경영진은 임직원의 성과지표를 상생협력에 높은 비중을 두는 방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대형 건설사와 협력업체 간 공사대금 지급과 관련한 갈등 사례를 소개하자 내놓은 답변이었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 실무부서 임직원의 성과지표가 왜곡돼 있으면 (협력업체의) 단가를 깎는다든지, 기술을 탈취하든지 하게 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이른바 ‘갑’과 ‘을’의 상생협력을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이 국감에서 상생협력을 강조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 경영의 고유 영역인 임직원 성과지표까지 거론한 것은 공정거래위원장이 아니라 과거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서나 어울리는 발언이었다.

기업 경영에 대한 ‘조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대기업들이 ‘적법한데 무슨 문제냐’는 태도를 불식해야 한다”며 “사회와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네이버에 대해서는 “네이버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을’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선도적인 계약문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당국으로서도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으름장도 놨다. 기업들에는 ‘불법이 없어도 민원이 들어오면 손보겠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 대해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처럼 우리 사회에 미래 비전 같은 걸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논란이 되자 공개 사과까지 했다. 이번 국감 발언들에도 “공정위원장으로서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개별 기업의 경영활동을 코치하는 곳이 아니다. 경영활동이 합법의 테두리에 있는지 여부를 감시하면 그만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공정위는 민원 처리 기관이 아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이 말에는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이유로 오버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본인의 말을 곱씹어봤으면 한다.

임도원 경제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