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중국 공산당이 두렵다
피터 센게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학습조직 이론’의 개척자다. 애플, 인텔, 포드, 비자, 할리데이비슨 등 많은 기업이 그의 저서 《학습하는 조직: 오래도록 살아남는 기업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를 필독서로 삼아 경영을 혁신했다. 그를 ‘사부(師父)’로 모시는 곳이 또 있다. 중국 공산당이다. 센게 교수는 2002년 9월 처음 중국을 방문해 공산당 중앙당교(黨校)에서 강의한 이후 단골 강사로 자리 잡았다.

그가 도입한 ‘학습형 조직’은 ‘관리형 조직’인 기존 조직과 대비시킨 개념이다. 관리형 조직이 ‘효율’을 지향하는 데 비해 학습형 조직은 문제의 발견과 해결에 집중한다. 구성원들은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문제 지점’부터 해결책 발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학습하도록 요구받는다.

중국 공산당이 ‘학습형 조직 건설’을 구호로 내걸고 본격 혁신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게 15년 전이다. 개혁-개방 노선에 힘입어 고도성장 가도를 질주하는 중이었지만, 변화하는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갈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 당의 외연(外延)을 과감하게 넓히는 일부터 서둘렀다. ‘인민의 적(敵)’이라던 기업인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한 ‘3개 대표론’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지난 9월에는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지침까지 발표했다. ‘노동자와 농민의 당’이라던 공산당이 맞는지 눈을 의심케 하는 내용들이다. 기업인의 재산권과 경영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 정비, 기업인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 경제정책 도입 시 기업인 의사 적극 반영 등. 중국 공산당은 지난주 폐막한 19차 전당대회에서도 ‘학습형 조직’으로서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시진핑 총서기(국가주석)의 권력 장악 드라마에 가려져 덜 조명받았지만, 향후 5년간의 3대 정책 키워드 가운데 첫 번째로 제시한 게 ‘개혁과 개방’이었다.

4년 뒤 창당 100주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을 이런 쉼 없는 변신작업에 주목해 ‘여명(새벽)의 위치’에 있다고 진단한 정치학자가 있다. 히시다 마사하루 일본 호세이대 교수다. “어떤 조직이 더 이상 존속이 위태로운 ‘황혼의 위치’에 있는지, 환경 변화를 기회로 삼아 더 강력하게 성장해나가는 ‘여명의 위치’에 있는지는 물리적인 연한이 결정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을 향해 나아가는 일련의 작업을 일관되게 적극적인 행위자로 주도하고 있다. 미봉책을 찾아 우왕좌왕하지 않고,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변화과정을 이끌고 있다.”(중국공산당: 위기의 심화인가, 기반의 재편성인가)

‘100년 정당’ 중국 공산당을 ‘여명의 위치’에 있다고 본 히시다 교수에게 한국의 정당들을 진단해달라면 어떤 답이 나올까.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년 전 총선을 앞두고 탄생했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지난 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출범했으니 둘 다 ‘신생정당’이다. 나이가 어리니 앞날이 창창한 ‘여명의 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의 요즘 행보에서 ‘무서움’이 느껴진다는 이들이 많다. ‘학습형 조직’으로서의 끊임없는 진화를 통해 자기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해보겠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지난주 전당대회에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넘어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개발도상국들에 전파해 세계의 리더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불거져 나올 미국과의 갈등에 대비한 포석도 깔기 시작했다.

엊그제 한국과 중국이 동시에 발표한 ‘관계개선 합의문’은 그래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 대해 사드 보복을 거둬들이고 관계를 개선해주는 대가로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를 얻어낸 대목이 개운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안으로는 이념을 넘어선 실사구시로 경제력을 키워나가고, 밖으로는 ‘찬란했던 옛 제국시대의 영화 재현’을 목표로 근육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우리는 이웃으로 두고 있다. 그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과 한국의 정당들 모습이 겹쳐진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