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감사인 지정제 부작용 최소화해야
모든 상장사의 회계감사법인을 정부가 사실상 강제로 지정하는 ‘감사인지정제도’가 포함된 외부감사법 전부개정안이 지난 9월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약 2000개 상장회사 중 일부 예외를 인정받는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장회사가 2020년부터 지정제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계정보 생산 주체로서 우리의 회계투명성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다만 정부나 국회가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촉발된 기업에 대한 비판 여론 및 회계사업계의 요구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제도를 서둘러 도입한 면이 없지 않다.

이번 조치는 여러 분식회계 방지 대책 가운데 가장 강도가 센 것이다. 당초 정부는 외부감사인 지정 대상을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상장사로 하면서 회사가 원하는 회계법인 세 곳 중 한 곳을 당국이 정하는 ‘선택지정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선택지정제 대신 정부가 회계법인 한 곳을 강제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규제 수위가 올라갔다.

기업의 회계부정 방지 대책으로서 감사인 지정제도는 올바른 처방이라고 보기 어렵다. 분식회계와 같은 불법 행위를 감사인이 인지했다면 그것은 공인회계사의 직업윤리상 타협 대상이 아니다. 감사인의 독립성이 없는 구조를 탓하면서 이를 눈감아 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분식회계와 같은 불법 행위는 감사인이 지정된다고 색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회계사들은 지정제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지정제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채택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정상적인 정책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감사제도를 깐깐하게 운용해야 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부가 상장회사 감사인을 모두 지정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정제도는 시장경제 원리에도 어긋나고 과도한 관치 논란을 피할 길이 없다.

법률에서는 회계처리의 신뢰성이 양호한 회사는 정부 지정을 받지 않도록 시행령에 위임했다.
정상적으로 회계처리를 하고 외부감사를 받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에는 지정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강제지정제의 불합리성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는 합리적 규정의 마련과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정구용 <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