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것은 고정관념”이라며 이를 깨야 한다고도 했다. 아울러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며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나서는 과정이 시작됐다”고 했다. 국가사회적 공동선(共同善)을 확장하고, 온 국민이 더 잘사는 선진부국, 정의사회로 이행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경제성장과 격차 해소, 개방과 무한경쟁의 국제질서에서 주권이 확립되는 자립강국, 과학기술의 진흥으로 인류진보에 기여하는 것은 현대국가들이 예외없이 지향하는 가치요, 목표다. 근대 법치국가를 거치고 20세기 전반을 풍미했던 전통 공산주의가 쇠퇴한 뒤 ‘진보·보수, 좌파·우파’ 정부의 차별점도 쉽게 안 보일 정도다.
문제는 방법론이고, 이런 지향점 이면의 사회상이다. 어떤 정부를 구성하고, 어떤 발전모델을 채택해, 중·장기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상국가에 좀더 접근하기도 하고 완전히 멀어지기도 한다. ‘큰 정부, 작은 정부’ ‘계획경제, 시장경제’ ‘국가 주도, 민간 중심’ ‘집단 우선, 개인 존중’ ‘국유화, 민영화’ 같은 고전적 논쟁이 아직도 계속되는 이유다.
예외적 현상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정부주도보다 민간과 시장의 자율이 성과를 더 냈고, 집단주의보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인권과 복리를 더 신장시켰다는 게 중론이다. 작은 정부의 효율성도 ‘야경국가론’ 이래 많은 서구선진국에서 입증됐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마크롱 정부가 추진 중인 일련의 친기업적 개혁정책이나 ‘2기 시진핑 체제’까지 일관되게 ‘개방 개혁’을 강화해온 중국의 변화상이 주목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만기친람형’ 정책들에 대한 우려도 그런 맥락이다.
4차 산업혁명에 접어든 현대사회에서 국가와 시민의 관계나 절제된 정부 역할에 대해 더 많은 공론화가 필요해졌다. 우리 사회가 ‘근대 국가’로의 이행 과정이 부족했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중심 경제’도 더 깊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집단’이 강조되는 사람인지, ‘개인’이 중시되는 사람인지에 따라 과정도, 결과도 크게 달라진다. 개헌론까지 제기된 마당에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자유민주주의’라는 70년 쌓아온 헌법가치에 맞는 담론으로 승화해 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
‘바람직한 국가’나 ‘현대 국가의 역할’은 원론적인 거대 담론이다. 하지만 국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대부분 논쟁이 이 문제에 닿는다.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도 기준점과 공유가치를 다지는 것은 중요하다. 국회와 학계의 건설적인 공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