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송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PVC테크센터 센터장(왼쪽)과 정기택 공정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재송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PVC테크센터 센터장(왼쪽)과 정기택 공정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최근 소비자들이 화학제품을 살 때 가장 눈여겨보는 것이 환경호르몬 배출 여부다. 국내 업체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화케미칼도 예외가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프탈레이트 성분이 없는 프리미엄 친환경 가소제 생산을 시작했다. 가소제는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이다. 이전에는 프탈레이트 성분이 들어간 DOP와 DINP 등을 주로 사용했는데 환경호르몬 배출 문제가 불거지면서 벽지와 바닥재, 완구류, 포장용 랩 등 사람들이 자주 접촉하는 소재나 유아용품에는 사용이 제한됐다. 이후 개발된 DOTP 제품이 친환경 가소제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가소제로서의 기능은 이전 제품보다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DOTP 제품에서 프탈레이트 성분을 완전히 제거해 유해성 문제를 해결한 게 한화케미칼이 개발한 ‘에코 데치(ECO-DEHCH)’다.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 3공장에서 지난 6월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연간 생산 능력은 1만5000t 규모다. 대전 신성동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에서 8년간의 연구개발(R&D) 끝에 제품 양산에 성공한 김재송 PVC테크센터 센터장과 정기택 공정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가소제란 무엇인가.

“폴리염화비닐(PVC)을 ‘트랜스포머’처럼 변신시켜주는 소재다. PVC의 염소 성분과 결합해 소재를 부드럽게 만든다. 가소제가 개발되기 전 PVC 제품은 파이프, 창틀, 새시 등 딱딱한 제품용으로만 쓰였다. 화학업계에서는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PVC와 결합해 고무처럼 부드러운 소재를 만들 수 있는 가소제를 개발했다. 가소제 함량을 낮추면 딱딱한 필름을, 함량을 늘리면 장판이나 주방용 매트처럼 부드러운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현재 PVC 시장에선 기존의 딱딱한 제품이 60%, 가소제를 첨가한 제품이 40%를 차지한다. 가소제 덕분에 PVC 산업의 규모가 성장했다.”

▶가소제에 대한 환경호르몬 문제는 언제 처음 제기됐나.

“2004년 한 방송사에서 ‘환경의 역습’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새집증후군 등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때 ‘PVC로 만드는 제품은 모두 환경호르몬을 배출한다’는 오해가 생겼다. PVC업계에서는 PVC 자체가 아니라 가소제가 문제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했다. 가소제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는데, 액체 성분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액체가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문제가 된다.”

▶DOP, DINP 등에 대한 사용 제한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DOP, DINP 등 기존에 사용하던 프탈레이트 성분을 가진 가소제는 유아용품, 바닥재, 벽지 등에 사용하는 것이 금지됐다. PVC업계는 부랴부랴 DOTP라는 새로운 가소제를 개발했다. 결합구조를 바꿔 친환경성을 강화했으나 프탈레이트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진 못했다. 가소제로서의 ‘가성비’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PVC 양의 50%만 넣어도 될 것을 DOTP는 60%를 넣어야 했다. 제조사로서는 제조원가가 올라갔다. 더 많은 양을 첨가하다 보니 액체가 흘러나올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프리미엄 친환경 가소제를 개발한 것인가.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가소제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친환경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하던 때였다. 규제 물질은 아니지만 가성비가 떨어지는 DOTP에서 프탈레이트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2009년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해 지난 4월 에코 데치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약 8년4개월이 걸렸다.”

▶기존 DOTP 제품과는 어떻게 다른가.

“환경호르몬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지난해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포장용 랩, 병뚜껑 등 식품 용도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통과했다. 미국 위생협회(NSF)에서 음용수에 사용되는 용기에 대해 검사한 결과 DOTP 대비 2배, DOP 대비 300배 더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성비도 높였다. 흡수가 빨라 가공 작업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자외선 안정성이 우수해 외부 현수막, 텐트 등에 사용해도 오랜 기간 변색이 없다. 내한성을 개선해 추운 지역에서 얼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바스프 등 해외 업체들이 생산하는 프리미엄 친환경 가소제와의 차별점은.

“해외 업체들이 만드는 제품은 DINCH라고 부른다. 친환경이라는 장점은 있으나 에코 데치에 비해 물성이 떨어진다. 현재 시장 가격도 에코 데치가 10%가량 싸다. 국산 제품이 개발되면서 해당 업체들이 가격을 낮춘 것을 감안하면 생산자로서는 30%가량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한화케미칼의 에코 데치가 ‘메기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해외 제품과 비교해 가공성이 좋아 생산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액체가 잘 빠져나오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도 핵심이다.”

▶8년간의 제품 개발 기간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상업성 확보가 관건이었다. 2013년 제품 개발에 성공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판매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공장 설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촉매 수명을 늘려야 했다. 촉매 연구를 위해 연구원들이 지난해에만 28주간 밤을 새웠다. 올해에도 20주간 밤을 새우며 연구한 결과 지난 6월 양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공정 개선을 통해 DOTP에서 에코 데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2013년 대비 50% 가까이 줄였다.”

▶제품은 주로 어디에 활용할 수 있나.

“벽지, 장판, 유아용품, 완구류, 어린이용 매트, 랩 등으로 친환경 수요가 있는 모든 제품군에 사용할 수 있다. 랩에는 식물성 가소제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매우 비싸다. 이런 부분을 에코 데치가 대체할 수 있다.”

▶시장 전망은 어떤가.

“전 세계 가소제 시장은 약 8조원 규모다. 현재 시장의 10%만이 친환경 가소제다. 유럽과 미국 등 친환경 소재에 대한 규제가 높은 지역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 정부의 친환경 기조가 강화되면서 가소제 규제가 생길 경우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에코 데치는 자외선 안정성이 우수해 중동 시장도 공략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시장의 반응이 좋은 데다 규모가 커질수록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만큼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생산 규모가 1만5000t인데, 개발자로서는 약 20배인 30만t까지 규모를 키우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친환경 인증에만 약 50억원을 투자했다. 앞으로도 받을 수 있는 친환경 검사는 모두 받을 계획이다. 랩, 병뚜껑 등 식품용 소재 인증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대전=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