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인사에서 승진한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의 공식 직함은 ‘종합기술원(종기원) 회장’이다. 삼성전자에서는 1990년 이후 27년 만에 나온 회장 승진자지만 종기원이 회장을 맞은 것은 18년 만이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직속이던 1999년 임관 원장이 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처음이다. 이후 종기원은 2008년 소속을 삼성전자로 옮겼다.

종기원의 인원은 1000명 남짓으로 직원 수가 30만 명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1%에도 못 미친다. 이 같은 ‘작은’ 조직을 회장이 맡는 이유는 종기원의 상징성에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종기원은 1987년 설립 이후 삼성전자 핵심 사업의 기초기술을 연구하면서 삼성전자를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일등공신”이라고 말했다. 종기원은 반도체 원천기술부터 QLED TV 등 디스플레이와 부품까지 삼성전자 계열사의 핵심 제품 기술을 개발했다.

권 회장도 개인적으로 종기원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반도체·부품(DS) 부문 대표로 일할 때부터 종기원의 연구 방향에 큰 관심을 두고 ‘개혁’을 추진해왔다. 5년 이상 걸리는 장기 연구는 국내 및 해외 대학들과의 산학협력 과제로 돌리고, 계열사들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중단기 과제에 집중하도록 구조개혁을 단행한 것도 권 회장의 ‘작품’이다.

권 회장은 몇 년 전부터 입버릇처럼 “퇴임 이후에는 후학을 양성하고 싶다”고 말해오기도 했다. 지난달 권 회장이 전격 퇴임 선언을 했을 때 주요 대학 석좌교수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권 회장이 종기원에서 직접 엔지니어들을 가르치며 교육 일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일 인사에서 종기원장은 삼성전자 사장 중에 가장 연장자인 김기남 DS부문 대표가 겸임하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권 회장이 김 사장과 함께 종기원을 삼성전자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요람’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