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어제 정부 부처 정책질의를 시작으로 429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 절차에 들어갔다. 예결특위는 상임위별 심사를 거쳐 넘어오는 예산안에 대해 오는 14일부터 소위원회를 가동, 증·감액을 결정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본격 심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른바 ‘쪽지예산’이 예결특위 소속 의원들에게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있는 데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마저 줄어 쪽지예산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지난 3일 국토교통부를 대상으로 한 국토교통위원회의 예산 관련 질의에서부터 지역구 민원이 쏟아졌다. 예산 정국에서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케 한다. 쪽지예산은 의원들이 지역구 민원성 예산을 정부와 국회의 정상적인 심사를 거치지 않고 막판 예결특위에 슬쩍 끼워넣는 것이다. 이는 법 위반이다.

국회법엔 ‘금액을 증가시킬 때는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관행을 보면 예결특위에서 증·감액을 확정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쪽지예산이 ‘김영란법’ 위반이라고 결론내린 바도 있다. 의원들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예산이 배정되도록 개입하는 것을 부정청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쪽지예산을 남발해왔다. 지역구 예산은 한 번 책정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지속 사업’으로 수년간 굴러갈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선거재료가 없다. 매년 여야 의원들이 확보한 지역구 예산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치적’으로 자랑하는 이유다. 국회의원들을 ‘면허받은 도둑’이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해만 해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쪽지성 민원이 4000여 건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SOC 예산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4000억원 증액됐다.

예산 편성은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원칙이어야 한다. 정말 지역에 필요한 예산이라면 정부 편성 과정에서부터 면밀한 검토를 거친 뒤 반영되도록 하는 게 옳다. 여야 의원들은 투명한 예산 편성을 왜곡시키는 쪽지예산과 결별을 선언하고 실천하기 바란다. 이게 진정한 국회개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