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 강화되자 이전등록…천문학적 유보금 가진 자회사도 옮겨

애플이 영국령 저지 섬으로 자회사들을 옮기는 수법으로 절세를 꾀한 사실이 밝혀졌다.

파이낸셜 타임스와 BBC 등에 따르면 애플은 아일랜드의 세법이 강화되자 현지에 두고 있던 자회사들을 영불해협에 위치한 저지 섬으로 이전 등록함으로써 법인세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애플의 절세 수법은 지난해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역외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했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6일 다시 공개한 대규모 조세회피처 자료 '파라다이스 페이퍼'에 낱낱이 담겨 있었다.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35%에 달하는 본국의 법인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에서 거둔 순익을 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절세를 도모하고 있다.

회원국별로 세율이 상이한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애플도 아일랜드에 자회사들을 둔 덕분에 세액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아일랜드의 세율은 12.5%였지만 애플의 현지 자회사들은 사실상 과세 대상 비거주자에 속해 있어 세금을 극도로 낮출 수 있었다.

이런 수법이 통한 때문인 듯 애플의 해외 납세액은 해외 순익의 5%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몇 년간은 2%를 밑도는 경우도 있었다.

EU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애플의 한 아일랜드 자회사가 납부한 연간 법인소득세율은 0.005%였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파라다이스 문서를 분석한 ICIJ는 아일랜드 정부가 2013년 EU를 비롯한 국제적 압력에 굴복해 비거주자로 돼 있던 내국 기업에 대한 세법을 개정하고 이듬해 중반 다국적기업들도 겨냥하기 시작하자 애플이 조세회피처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애플은 미국 로펌 베이커 매켄지를 통해 영국령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에 버뮤다는 물론 케이먼 군도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맨 섬, 저지 섬 등의 세법 구조를 알아봐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애플비는 파라다이스 페이퍼가 대량으로 유출된 곳이다.

애플은 이들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2014년말 2개의 아일랜드 자회사를 저지 섬에 등록하고 또다른 자회사인 애플 오퍼레이션스 유럽(AOE)은 아일랜드의 과세대상 거주자로 전환했다.

저지 섬은 영국 왕실령에 속하는 해외 영토로, 독자적 세법을 갖추고 있으며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단 한 푼의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다.

저지 섬에 등록된 자회사들은 애플이 해외에 쌓아둔 2천520억 달러의 유보금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애플 오퍼레이션스 인터내셔널(AOI), 그리고 애플의 값진 지적재산권 가운데 일부에 대해 권리를 보유한 애플 세일즈 인터내셔널(ASI)이었다.

ASI는 아일랜드 기업에 지재권을 매각한다고 해도 저지 섬에 등록돼 있는 만큼 매각차익에 대한 세금을 아일랜드 당국에 납부할 이유가 없게 된다.

한편 지재권을 사들인 아일랜드 기업도 세액 공제를 통해 지재권 인수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

이는 아일랜드 정부가 세법을 개정하면서 특허권과 상표권과 같은 지재권에 대해 세액 공제를 확대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애플은 실제로 새로운 허점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에서 갑자기 지재권 자산이 26%나 급증한 것이 이를 시사한다.

그해에 아일랜드의 무형자산은 무려 2천500억 유로가 늘어났다.

한 조세 전문가는 애플이 향후 15년간 매년 아일랜드에서 받을 세액 공제는 13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측은 ICIJ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자회사의 지위를 변경함으로써 외국에서 납부한 세금을 줄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아일랜드 정부에 낸 세금은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15억 달러를 아일랜드 정부에 납부했고 이는 아일랜드 정부가 징수한 법인세 총액의 7%에 해당한다는 것이 애플 측의 답변이었다.

애플 측은 자회사의 지위 변경은 2014년말에 미국과 아일랜드, EU당국에 모두 통보했다고 말하고 "애플은 법을 준수하고 있고 시스템이 변화한다면 이를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