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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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등록금 마련하려면 조교는 해야겠고, 조교 하다 보면 정작 공부할 시간이 안 나고… 악순환이에요."

"조교 모집공고에 적혀있는 근무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근무 외 시간이라고 교수 연락을 안 받을 수 있나요? 저녁에 울리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확인하고 싶지도 않아요."

서울 소재 한 4년제대 대학원생 A씨는 올 2학기 들어 조교를 그만뒀다. 각종 업무 처리에 교수의 사적 심부름까지 처리하는 '시간외 근무'까지 하다보면 본업인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서다. 학위논문 준비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차라리 학자금 대출을 받기로 했다.

또 다른 대학원생 B씨가 받는 연구조교 장학금은 한 학기 등록금인 500만 원 수준이다. 명목은 장학금이지만 사실상 월급이다. 6개월 근무로 환산하면 월 83만 원을 받는 셈이다. 하루 8시간씩 주5일 근무로 따져보면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6470원)에도 못 미치는 5180원 정도다.

9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학원 '학생'이자 교수의 '조교'인 이중 정체성이 대학원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교가 되면 본업인 학업에 집중 못하게 되는 데다 받는 금액도 많지 않고 각종 시간외 근무까지 도맡아야 한다. "녹록치 않은 현실"이라고 대학원생들은 입을 모았다.

B씨는 스스로를 '사노비'라 불렀다. 마음 편히 저녁 약속 한 번 잡지 못하는 현실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주말도 온전히 쉴 수 없다. 교수가 연구실에 나오면 덩달아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밤늦게까지 카톡이나 전화로 업무 지시를 받고 처리하다 보면 정작 공부에는 집중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를테면 교수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거나 우체국 심부름 따위가 있을 경우에도 매번 조교를 호출하는 식이다. 이 같은 상황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끼니도 못 챙겨 먹을 정도라고 했다.

'퇴근 후 카톡금지법'이 가장 필요한 직군 중 하나가 조교라는 것이다. '근로자'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한 데다, '퇴근' 이후에는 자신의 본업인 학업에 정진해야 하는데도 학습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데서 빚어지는 문제가 심각하다.

한 대학원생은 "특히 시험기간이나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타이밍에 각종 잡무로 시간을 뺏기면 교수에게 항의할 수도 없고 다들 속앓이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대학원생 조교의 기본적인 근로권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였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내규에 근무시간이 명시됐다 해도 지켜지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해 노웅래 의원실(더불어민주당)과 교육부가 조사한 '국립대 및 서울 소재 대학생 조교 현황 자료'에 따르면 34개교 가운데 조교와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대학은 단 한 곳뿐이었다. 또 조사 대상의 92%가 조교 급여를 임금이 아닌 장학금 형태로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액을 지급했다.

일반적으로 근로자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근로시간 등이 불명확한 탓에 불이익을 받을 여지가 많다.

최저임금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조교가 근로자로 인정받은 경우에 합법적으로 적용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자라고 판단되는데 적정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본인의 근로자성을 입증하는 서류를 준비한 다음 신고 절차를 밟으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을'의 입장에 놓인 대학원생이 이 절차를 밟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원생은 "부당 대우를 받고 조교 활동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대부분 쉬쉬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원생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논문 심사나 유학 추천서 작성 권한이 전적으로 지도교수에게 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가 학위 취득부터 취업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문제제기와 개선은 난망하다.

지난 8월 발의된 '퇴근 후 카톡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외 시간에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업무 지시를 내리는 등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연장근로'로 보고 통상임금의 50% 이상 가산해 지급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실효성 논란 속에 국회 계류 중이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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