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5성급 리츠칼튼호텔이 갑자기 사우디 왕족과 전·현직 장관으로 붐볐다. 호텔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32)의 반대파 숙청 작업으로 체포된 왕족과 장관들의 ‘감옥’으로 바뀌었다고 뉴욕타임스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까지 개입한 사우디 '왕좌의 게임'…'탈석유' 개혁 급물살 탈까
사우디는 이들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해 자가용 비행기 전용공항도 폐쇄했다. 살만 빈압둘아지즈 국왕과 그의 아들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부패 척결이 숙청의 명분이다. 빈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반부패위원회가 체포한 인원이 60여 명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다. 사우디 왕족의 부패는 공공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당장 석유 판매를 중단하더라도 부패로 인해 도난당한 돈이 반환되면 20년간 국가예산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살만 국왕이 빈살만 왕세자에게 권력을 몰아주려고 숙청을 용인했다는 게 중론이다. 살만 국왕은 지난 6월 조카이자 빈살만의 사촌인 무함마드 빈나에프 알사우드 내무장관(58)을 왕세자 자리에서 몰아냈다. 일종의 ‘정변’이었다.

그는 이번 숙청에선 또 다른 조카인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를 제거했다. 빈탈랄은 미국 기업에 거액을 투자해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인물이다. 지난 5월 기준 자산 규모가 178억달러(약 20조원)에 달하는 대형 투자회사인 킹덤홀딩컴퍼니의 소유주다. 미국 씨티그룹과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 트위터 등 세계 주요 기업 대주주이기도 하다. 애플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또 사우디 원유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알려졌다.

이번 사태를 정치적 ‘왕좌게임’으로만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살만 국왕과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개혁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왕족은 그동안 이권을 독점하며 원유 수출에서 얻은 부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사우디 인구는 3200만 명으로 30년 동안 세 배로 늘어났다. 국제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서 사우디 정부는 재정이 악화됐다. 더 이상 왕실의 특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사우디는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 회귀해야 한다며 종교와 왕실의 역할을 약화시키겠다고 했다.

탈(脫)석유화 정책과 국가재정 건실화 프로젝트에는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민영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아람코의 성공적 상장을 위해 애써왔던 빈살만 왕세자의 권력 강화는 원유시장에서 유가 상승 재료로 인식됐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반대파 숙청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일각에선 분석했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로 바뀐 것도 빈살만 왕세자에게 힘을 실어줬다. 빈나에프 전 왕세자는 버락 오바마 전 정부와 가까웠으나 빈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정부와 유대를 강화했다. 빈탈랄 왕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대적이다. 그는 트럼프가 대선 후보일 때 “당신은 미국 공화당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의 수치”라며 “절대로 승리하지 못할 것이니 미국 대선에서 기권하라”고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친분을 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과 왕세자를, 정확히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을 크게 신뢰하고 있다”며 지지를 보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