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일본서 활동 중인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문화계 거장 생생 토크
"1000명 오디션서 찾은 프랑수아 를뢰
하늘이 준 선물…아직도 감흥 못 잊어"
음악에 대한 쉼 없는 열정
난 원래 반주자로 태어나 실내악서 피아노 연주 즐겨
클래식은 깊이에 끝이 없어…얼마나 파고드느냐에 달려
향후 활동 계획은
도쿄필 명예 계관지휘자로 2018년 1월 '환상교향곡' 연주
라스칼라서 '피델리오' 등 지휘…환경 테마 음악회도 열고파
"1000명 오디션서 찾은 프랑수아 를뢰
하늘이 준 선물…아직도 감흥 못 잊어"
음악에 대한 쉼 없는 열정
난 원래 반주자로 태어나 실내악서 피아노 연주 즐겨
클래식은 깊이에 끝이 없어…얼마나 파고드느냐에 달려
향후 활동 계획은
도쿄필 명예 계관지휘자로 2018년 1월 '환상교향곡' 연주
라스칼라서 '피델리오' 등 지휘…환경 테마 음악회도 열고파
![유럽·일본서 활동 중인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https://img.hankyung.com/photo/201711/AA.15159688.1.jpg)
국내에선 간헐적인 해외 악단의 내한(라스칼라필, 빈필)과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연주만 있었을 뿐 정명훈의 예술적 비전을 이야기할 자리가 드물었다. 2014년 말 서울시향 사태 이후 국내 언론과 단독 인터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쿄필 일정 차 최근 도쿄 신주쿠에 머문 그를 만나 음악에 대한 쉼 없는 열정과 남은 꿈에 대해 들어봤다.
▶요즘 일과는 어떤가.
“서울시향 시절 리허설 빌딩이 생겼을 때 제일 높은 방을 개인 연습실로 달라고 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피아노를 칠 수 있어서다. 오케스트라 연습이 끝나면 음악감독 사무실 대신 그 방으로 가서 피아노를 치곤 했다. 도쿄에선 대기실 피아노가 좋으면 조금 연습하다가 악단이 오면 리허설을 시작한다.”
▶피아니스트 활동을 늘릴 건가.
“피아노는 (특별한 계획 없이) 그냥 연습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단원들과의 실내악이다. 체임버 뮤직에서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다. 그런 자리에 가면 보통 말을 안 하고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원래 따라가는 걸 좋아한다.”
▶지휘자는 리더가 돼야 한다고 하는데.
“난 반주자로 태어났다. 칠남매 중 여섯째였고 누나들(정명화, 정경화)이 연주하는 걸 들으며 컸다. 누나들과 앙상블을 할 때 ‘피아노(소리)가 너무 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난 내 소리를 작게 하려고 훈련받은 사람이다. 지휘를 처음 하기 시작할 때도 지시하는 걸 싫어했다.”
▶한국의 피아노 인재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김)선욱, (조)성진, (임)주희 모두 디지털로 배우는 사람이다. 거의 실수 없이 해낸다. 우리 민족의 기질과 피아노가 맞아서인 것 같다. 그런데 클래식은 깊이에 한이 없다. 얼마나 더 파고들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예술조직의 감독 시절 오디션이 늘 부담이라고 했다.
“의무니까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시간이 아까웠다. 판단을 해줘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날이 내 생일이었다. 바스티유 시절(바스티유오페라오케스트라 상임지휘) 거의 1000명의 오디션을 했는데 맘에 드는 사람은 딱 한 명 나왔다. 오보에 연주자인 프랑수아 를뢰였다. 하늘에서 나에게 선물을 줬구나 했다. 스물 몇 살의 마른 소프라노(나탈리 드세이)도 왔는데 아주 잘했다.”
▶신인은 어디로 가서 배워야 하나.
“책을 공부해 100개 정도 배울 게 있다 싶으면 다 잊고 한두 가지만 기억한다. 그런데 그 한두 개가 평생을 간다. 여기서 한두 개, 저기서 한두 개 모아야 자신의 것이 된다. 자세히 보면 나도 혼자 해낸 건 별로 없다.”
▶차기 베를린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인 키릴 페트렌코도 당신의 수강생이었다.
“이탈리아 시에나음악원에 한 번 가면 3주 정도 마스터클래스를 하는데, 그때 만난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게다. 학생들에게 ‘내년에도 여기 오면 같은 소리를 할 거니까 또 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많이 다시 왔다.”
▶한국 공연장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홀이 겉만 멋있지 안에 가면 말도 안 되는 곳이 지금도 많다. 디테일과 유지 측면에서 일본에서 배울 점이 있다. 우선 기본이 확실해야 한다. 연주자가 지방에 가도 걱정이 없어야 한다.”
▶서울시향 이외에 국내 다른 악단을 지휘할 기회는 적었다. 앞으로는 어떤가.
“1998년 KBS 교향악단을 맡을 때 하고 싶던 건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제일 중요한 문제는 인권과 환경이다. 특히 환경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20년 전 환경 음악회를 만들었는데 주변에서 돈이 든다고 관심을 끊었다. 한국 오케스트라들이 미래를 위해 이런 문제를 더 생각해야 한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나. 자르브뤼켄(독일) 시절이라면 독어를 더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자식 교육도 그렇고 자르브뤼켄보다 로마나 파리가 살기에 낫겠다 싶었다. 독일에 더 있었으면 가족 모두 독어를 잘 했을 거다. 다 운명이란 게 있다.”
도쿄=한정호 음악평론가 imbreez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