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방 하나 소유하지 않은 에어비앤비가 힐튼이나 메리어트 같은 대형 호텔 체인들을 궁지에 몰고 있습니다. 자동차 한 대 없는 우버는 택시산업 자체를 대체할 기세고요. 플랫폼의 시대엔 ‘다윗’이 ‘골리앗’을 꺾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인기 경영서 《플랫폼 레볼루션》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상지트 폴 초더리 플랫폼싱킹랩스(Platform Thinking Labs)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과 발맞춰 플랫폼 기업들이 빠르게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업 내부에서 개발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 이익을 내는 전통 비즈니스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건물, 땅과 같은 고정자산이 아니라 플랫폼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플랫폼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개념이다.

"땅·건물에 투자하는 시대 끝났다… 미국 시총 '빅5' 모두 플랫폼 기업"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추상적인 공간이다.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아마존, 운전자와 승객을 매칭해주는 우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플랫폼 기업은 거대한 네트워크의 관리자다. 직접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 부가가치를 얻는 ‘파이프라인’ 기업과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다르다.”

▷플랫폼 기업의 강점은 무엇인가.

“자산에 의존하는 파이프라인 기업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르다. 힐튼이 매출을 늘리려면 땅을 구입하고 호텔을 새로 지어야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소수 직원의 클릭 몇 번으로 홈페이지를 통한 숙소 예약을 늘릴 수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고정자산이 아니라 플랫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력도 문제가 안된다. 잘 만들어진 플랫폼 생태계엔 수만 명의 외부 개발자가 따라다닌다. 현재 미국 증시 시가총액 ‘빅5’인 애플,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이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으로 꼽힌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플랫폼 기업들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고 있는 모습이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자산이 많지 않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라 하더라도 손쉽게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기업들이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도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봐야 한다. 트랙터 제조업체인 존디어가 데이터 플랫폼 기업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땅·건물에 투자하는 시대 끝났다… 미국 시총 '빅5' 모두 플랫폼 기업"
▷후발주자가 업계를 장악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구글도 처음엔 야후의 아류였다. 구글은 사업 초기부터 핵심 데이터를 외부 개발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했고 ‘게이트키퍼(검열자)’ 역할을 하는 중간 직원도 두지 않았다. 창작물을 표출하려면 직원들의 감수를 받기 위해 수주일을 기다려야 했던 야후의 허점을 ‘개방’이란 키워드로 넘어선 것이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동종업계 선배 기업인 마이페이스와 달리 플랫폼을 외부 개발자들에게 공개하는 전략으로 승기를 잡았다.”

▷전통적인 사업모델을 지향했던 기업이 플랫폼 비즈니스로 성공한 사례가 있나.

“GE가 대표적이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전사업을 중국 하이얼에 매각한 뒤 사물인터넷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했다. 이 회사는 프레딕스(Predix) 플랫폼으로 B2B(기업 간 거래) 사물인터넷 시장을 이끌고 있다. 항공기 엔진 같은 산업용 기계에 센서를 달아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분석해 장비의 효율을 높이는 게 프레딕스의 역할이다. 에어아시아는 이 플랫폼을 활용해 비행기 연료비 1000만달러를 절감했다.”

▷플랫폼 기업들의 몸값이 너무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에 어스워스 다모다란 뉴욕대 교수와 빌 걸리 벤치마크캐피털 파트너가 우버의 몸값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다모다란 교수는 전통적인 재무 공식을 바탕으로 우버의 가치가 59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고 걸리 파트너는 59억달러에 25를 곱해야 제대로 된 몸값이 나온다고 응수했다. 플랫폼 기업의 몸값은 네트워크 효과에서 나온다. 사용자가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플랫폼을 통해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 얼마나 이뤄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플랫폼 참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호작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기업이라면 비싼 가격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한국 대기업도 다양한 플랫폼 전략을 펴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체들이다. 제품 생산에 플랫폼의 개념을 접목해 효율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를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제조업체로 만족한다면 상관없지만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사업 모델에 더 많은 변화를 줘야 한다. 현재 사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업무 중 소비자들에게 돌릴 수 있는 일이 있는지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게이트키퍼를 줄이고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자원을 끌어다 쓰는 게 플랫폼 비즈니스의 첫걸음이다.”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도 고민이 많다. 내수시장이 크지 않고 언어도 걸림돌이다.

“내수시장이 크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지역 기업들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극복하지 못할 문제만은 아니다. 마이페이스 이용자들에게 꾸준히 인디밴드 동영상을 유포하면서 성장한 유튜브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영어권 플랫폼에 없는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선 데이터 질이 기업의 몸값에 비례한다.”

■ 상지트 폴 초더리는…

인기 경영서 《플랫폼 레볼루션》
인기 경영서 《플랫폼 레볼루션》
상지트 폴 초더리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전도사로 꼽힌다. 플랫폼싱킹랩스라는 컨설팅업체를 설립, 주요 글로벌 기업 임직원에게 플랫폼 전략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그를 ‘세계 100대 젊은 글로벌 리더’의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논란이 많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징을 명쾌하게 설명했다는 이유에서다. 출판시장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2016년 미국에서 선보인 공저서 《플랫폼 레볼루션》은 미국 포브스지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선정한 ‘CEO가 꼭 읽어야 하는 책’에 뽑혔다.

실리콘밸리=송형석 특파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