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옷은 얼마 뒤에야 반값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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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동의 가격의 비밀
지난주 겨울 점퍼를 장만하기 위해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P 남성복 브랜드 매장에 찾은 박영민(33·영등포구) 씨는 쓰린 가슴을 안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마음에 쏙 든 점퍼가 있었지만 86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조용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어서였습니다.
"백화점 세일기간이라 추가 5만원의 할인 혜택이 있다"는 매장 직원의 말이 더 슬프게 들렸다는 그였습니다. 박씨는 "그 점퍼가 매우 마음에 들어 이번 겨울에 꼭 입고 싶었지만 나중에 가격이 떨어지면 그때나 고민해봐야겠다"며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옷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절반 값으로 떨어질까요. 박씨의 경우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겨울 시즌 의류가 판매되기 시작하는 11월이 되면 더욱 궁금해지는 질문입니다.
백화점에서 두툼한 점퍼라도 하나 장만하려면 수십 만원에서 100만원이 넘어가기도 합니다.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본인이 원하는 점퍼를 입고 싶어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백화점에 입점한 의류 회사들은 최대한 제 값을 받고 팔고 싶어 할 테고요.
의류 유통은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희소가치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어떤 옷을 구매하려고 하는 소비자가 많은 상황에서 공급량이 적을 때 부여되는 것이 바로 희소가치입니다.
공급량이 적지만 그 물건을 찾는 소비자도 별로 없는 경우엔 희소가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만약 본인이 백화점에서 특정 브랜드 제품에 대한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면 희소가치를 잘 따져봐야 합리적인 소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선 어느 정도 지불 능력이 있는 소비자라면 백화점 정기세일의 마지막주를 노리는 게 그나마 저렴하게 살 확률이 높습니다. 의류는 해당 계절보다 2~3개월 앞당겨 판매를 시작하기 때문에 겨울 점퍼라면 백화점 '가을 정기세일'의 마지막 주를 주시해야 합니다.
의류 회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재고'입니다. 세일 막바지에 들어서도 목표한 판매량에 근접하지 못할 경우 의류 회사들은 추가 할인을 외치며 소비자들을 유혹합니다. 의류회사 입장에선 재고로 남을 옷들을 처리하는 과정이 곧 비용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게 이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불 의사가 어느 정도 있는 소비자가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이 백화점에서 여는 기획전입니다. 예를 들어 '간절기 특집', '예복 대전', '골프웨어 주간' 등이 그때입니다.
이러한 기획전은 백화점들이 계절이나 날씨 등에 따라 모객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는 것인데 만약 본인이 염두에 뒀던 옷의 브랜드가 이 행사에 참여한다면 방문해 볼만합니다. 보통 기획전에선 기존 가격 대비 10~20% 저렴한 가격에 해당 시즌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1차 의류 유통 시장(백화점, 해당 브랜드 대리점)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옷을 꼭 갖고는 싶지만 지불 능력이나 의사가 부족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감내할 수 있는 소비자라면 2차 의류 유통 시장을 공략할만합니다. 아울렛, 홈쇼핑, 지역 쇼핑몰 같은 곳이 대표적입니다.
아울렛은 기본적으로 백화점에서 판매하다가 남은 이월상품을 취급합니다. 예를 들어 10월에 1차 유통 시장에서 선보인 겨울 옷은 1월 말이면 거의 자취를 감추고 물류창고에 들어갑니다.
이 옷들은 다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이면 아울렛에서 선보입니다. 만약 본인이 '찜' 해뒀던 옷이 운 좋게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선택 받지 못해 물류창고에 있었다면 약 9~10개월 뒤에 아울렛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아울렛으로 넘어갈 때 할인율은 해당 의류 회사의 영업본부가 결정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울렛의 할인율은 백화점 가격 대비 30~50%입니다.
만약 영업본부에서 판단하길 시즌이 지났어도 여전히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만한 요소가 있는 옷이라면 할인율은 적어집니다. 예를 들어 유행이 크게 지나지 않은 디자인이라거나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사이즈와 색상인 옷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시즌이 한 번 돌아도 끝내 안 팔린 '2년차 재고' 혹은 그 이상인 '3년차 재고' 같은 경우 할인율은 80~90%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2차 유통 시장엔 온라인 쇼핑몰도 있습니다. 이른바 '역시즌 판매'(겨울에 여름 옷을 팔고 여름에 겨울 옷을 판매하는 세일즈 행위)도 대부분 온라인 시장에서 이뤄집니다.
백화점에서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몰(엘롯데, H패션몰, 에스에스지닷컴)이나 지마켓, 옥션 같은 오픈마켓, 쿠팡, 티몬 같은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 등이 대표적입니다.
의류 업체들은 물류 비용 절감을 위해 최근 온라인 판매 시장을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 등의 문제로 판매 품목이 오프라인보다 제한적입니다.
또 온라인 판매 업체가 제조사로부터 안정적으로 재고를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도 걸림돌입니다. 소비자가 주문을 냈는데 업체로부터 "확인해보니 재고가 없다, 주문 취소하고 환불해주겠다"는 얘기를 듣는 게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모든 변수는 재고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본인이 원하는 옷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사이즈에 인기 있는 디자인이라면 사실상 아울렛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류회사가 1년 내내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재고 전략입니다. 소비자가 구매하기를 원할 때 알맞은 사이즈와 찾는 색상이 부족함 없이 매대에 올려져 있느냐, 또 시즌이 끝났을 때 남는 옷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느냐 같은 것들입니다.
백화점 매장 앞에 걸려 있는 정도의 옷들이라면 제품이 안 팔려 아울렛에서까지 팽팽 남아돌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다품종 생산을 추구하는 '에이치앤엠(H&M)' 같은 SPA(제조유통 일괄) 업체들이 패션계 유행을 주도하면서 이 같은 재고 줄이기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의류회사들은 아울렛, 온라인 등 2차 유통 시장에서도 팔리지 않는 제품들을 모아 재고처리 전문업체에 kg당 돈을 받고 넘깁니다. 의류회사가 자신들의 제품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재고처리 업체들은 이런 제품을 모아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의 비공식적인 유통 채널로 수출합니다. 국내 패션업계에서는 이렇게 수출하는 물량이 한 해에 약 7500t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남는 옷들을 재고 처리 업체에 넘기는 대신 비용을 써가면서라도 자사 제품을 소각합니다. 이 과정도 소각 비용과 환경 부담금 등을 업체에서 지불해야 합니다.
싸게라도 팔면 이득인 것을 명품 업체들은 왜 굳이 돈을 들여가면서 태워버리는 걸까요. 바로 희소성의 법칙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려는 것이죠.
소비자들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명품을 구입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제품이라는 희소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더이상 해당 명품이 희소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명품 브랜드로써의 운명은 거기까지입니다. 업체들이 무엇보다 재고 관리에 신경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백화점 세일기간이라 추가 5만원의 할인 혜택이 있다"는 매장 직원의 말이 더 슬프게 들렸다는 그였습니다. 박씨는 "그 점퍼가 매우 마음에 들어 이번 겨울에 꼭 입고 싶었지만 나중에 가격이 떨어지면 그때나 고민해봐야겠다"며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옷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절반 값으로 떨어질까요. 박씨의 경우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겨울 시즌 의류가 판매되기 시작하는 11월이 되면 더욱 궁금해지는 질문입니다.
백화점에서 두툼한 점퍼라도 하나 장만하려면 수십 만원에서 100만원이 넘어가기도 합니다.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본인이 원하는 점퍼를 입고 싶어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백화점에 입점한 의류 회사들은 최대한 제 값을 받고 팔고 싶어 할 테고요.
의류 유통은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희소가치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어떤 옷을 구매하려고 하는 소비자가 많은 상황에서 공급량이 적을 때 부여되는 것이 바로 희소가치입니다.
공급량이 적지만 그 물건을 찾는 소비자도 별로 없는 경우엔 희소가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만약 본인이 백화점에서 특정 브랜드 제품에 대한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면 희소가치를 잘 따져봐야 합리적인 소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선 어느 정도 지불 능력이 있는 소비자라면 백화점 정기세일의 마지막주를 노리는 게 그나마 저렴하게 살 확률이 높습니다. 의류는 해당 계절보다 2~3개월 앞당겨 판매를 시작하기 때문에 겨울 점퍼라면 백화점 '가을 정기세일'의 마지막 주를 주시해야 합니다.
의류 회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재고'입니다. 세일 막바지에 들어서도 목표한 판매량에 근접하지 못할 경우 의류 회사들은 추가 할인을 외치며 소비자들을 유혹합니다. 의류회사 입장에선 재고로 남을 옷들을 처리하는 과정이 곧 비용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게 이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불 의사가 어느 정도 있는 소비자가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이 백화점에서 여는 기획전입니다. 예를 들어 '간절기 특집', '예복 대전', '골프웨어 주간' 등이 그때입니다.
이러한 기획전은 백화점들이 계절이나 날씨 등에 따라 모객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는 것인데 만약 본인이 염두에 뒀던 옷의 브랜드가 이 행사에 참여한다면 방문해 볼만합니다. 보통 기획전에선 기존 가격 대비 10~20% 저렴한 가격에 해당 시즌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1차 의류 유통 시장(백화점, 해당 브랜드 대리점)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옷을 꼭 갖고는 싶지만 지불 능력이나 의사가 부족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감내할 수 있는 소비자라면 2차 의류 유통 시장을 공략할만합니다. 아울렛, 홈쇼핑, 지역 쇼핑몰 같은 곳이 대표적입니다.
아울렛은 기본적으로 백화점에서 판매하다가 남은 이월상품을 취급합니다. 예를 들어 10월에 1차 유통 시장에서 선보인 겨울 옷은 1월 말이면 거의 자취를 감추고 물류창고에 들어갑니다.
이 옷들은 다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이면 아울렛에서 선보입니다. 만약 본인이 '찜' 해뒀던 옷이 운 좋게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선택 받지 못해 물류창고에 있었다면 약 9~10개월 뒤에 아울렛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아울렛으로 넘어갈 때 할인율은 해당 의류 회사의 영업본부가 결정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울렛의 할인율은 백화점 가격 대비 30~50%입니다.
만약 영업본부에서 판단하길 시즌이 지났어도 여전히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만한 요소가 있는 옷이라면 할인율은 적어집니다. 예를 들어 유행이 크게 지나지 않은 디자인이라거나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사이즈와 색상인 옷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시즌이 한 번 돌아도 끝내 안 팔린 '2년차 재고' 혹은 그 이상인 '3년차 재고' 같은 경우 할인율은 80~90%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2차 유통 시장엔 온라인 쇼핑몰도 있습니다. 이른바 '역시즌 판매'(겨울에 여름 옷을 팔고 여름에 겨울 옷을 판매하는 세일즈 행위)도 대부분 온라인 시장에서 이뤄집니다.
백화점에서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몰(엘롯데, H패션몰, 에스에스지닷컴)이나 지마켓, 옥션 같은 오픈마켓, 쿠팡, 티몬 같은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 등이 대표적입니다.
의류 업체들은 물류 비용 절감을 위해 최근 온라인 판매 시장을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 등의 문제로 판매 품목이 오프라인보다 제한적입니다.
또 온라인 판매 업체가 제조사로부터 안정적으로 재고를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도 걸림돌입니다. 소비자가 주문을 냈는데 업체로부터 "확인해보니 재고가 없다, 주문 취소하고 환불해주겠다"는 얘기를 듣는 게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모든 변수는 재고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본인이 원하는 옷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사이즈에 인기 있는 디자인이라면 사실상 아울렛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류회사가 1년 내내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재고 전략입니다. 소비자가 구매하기를 원할 때 알맞은 사이즈와 찾는 색상이 부족함 없이 매대에 올려져 있느냐, 또 시즌이 끝났을 때 남는 옷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느냐 같은 것들입니다.
백화점 매장 앞에 걸려 있는 정도의 옷들이라면 제품이 안 팔려 아울렛에서까지 팽팽 남아돌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다품종 생산을 추구하는 '에이치앤엠(H&M)' 같은 SPA(제조유통 일괄) 업체들이 패션계 유행을 주도하면서 이 같은 재고 줄이기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의류회사들은 아울렛, 온라인 등 2차 유통 시장에서도 팔리지 않는 제품들을 모아 재고처리 전문업체에 kg당 돈을 받고 넘깁니다. 의류회사가 자신들의 제품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재고처리 업체들은 이런 제품을 모아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의 비공식적인 유통 채널로 수출합니다. 국내 패션업계에서는 이렇게 수출하는 물량이 한 해에 약 7500t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남는 옷들을 재고 처리 업체에 넘기는 대신 비용을 써가면서라도 자사 제품을 소각합니다. 이 과정도 소각 비용과 환경 부담금 등을 업체에서 지불해야 합니다.
싸게라도 팔면 이득인 것을 명품 업체들은 왜 굳이 돈을 들여가면서 태워버리는 걸까요. 바로 희소성의 법칙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려는 것이죠.
소비자들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명품을 구입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제품이라는 희소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더이상 해당 명품이 희소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명품 브랜드로써의 운명은 거기까지입니다. 업체들이 무엇보다 재고 관리에 신경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