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세력 놀이터 된 코스닥 벤처… 배후는 그 회사 대표이사
경영권을 지키려 시세조종을 의뢰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와 주가조작 세력이 재판에 넘겨졌다. 한 때 유망 벤처기업으로 주목받았던 회사는 개미 투자자를 울리는 잡주(雜株)로 전락해 끝내 상장폐지됐다. 4년 전 사건으로 증거가 상당수 인멸돼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았지만 이들 세력이 고용한 시세조종꾼이 다른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부장검사 문성인)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주식 브로커 박모씨(57)와 이모씨(58), 시세조종 전문가 이모씨(47)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검찰은 또 이들에게 5억원을 주고 시세조종을 의뢰한 나노섬유업체 A사의 전 회장 김모씨(47·별도 사기범죄 혐의로 올해 5월 구속 수감)를 비롯해 범행에 가담한 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1명을 약식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전직 증권업 종사자인 김씨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시세조종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2011년 A사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저축은행로부터 31억여원을 빌려 A사를 인수했다. 돈을 빌리면서 그는 “채권자는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 담보로 맡겨진 주식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다”는 특약을 맺었다. 회사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011년부터 작년까지 총 16차례에 걸쳐 전환사채(CB)도 발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는 이 중 4차례나 전환사채를 중복 발행해 사기 혐의로 현재 구속 수감 중”이라며 “주가가 올라야 경영권도 지키고 채무도 줄일 수 있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주가 하락으로 채권자들이 담보로 잡은 주식을 매도할 것을 우려한 김씨는 2013년 10월 주식 브로커 박씨와 이씨에게 각각 2억원과 3억원을 주고 시세조종을 의뢰했다. 이들은 이어 각각 다른 전문 시세조종꾼들과도 ‘하청 계약’을 맺었다.

주가 조작은 2013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수십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단타 매수주문을 지속적으로 넣거나 세력끼리 매매를 주고 받으며 매수세를 유인하는 통정 매매가 이뤄졌다. 차익 실현보다는 일반 투자자 유인을 통한 주가 방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시세조종꾼들은 되레 손해를 보기도 했다. 손실금은 김씨가 매워줬다.

편법 경영으로 그가 인수한 A사는 급격히 망가졌다. 1998년 세워져 한때 반도체, 나노 기술로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유망중소벤처로 꼽혔던 이 회사는 2011년을 전후해 대표적인 코스닥 잡주로 전락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사실상 도산 상태에 빠졌지만 주가는 상하한가를 오르내리다 올해 4월 상장폐지됐다.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과 고위 검사가 사외이사, 전직 지방국세청장이 감사였지만 아무런 감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실적 나쁜 코스닥 상장사의 평범한 몰락사(史)로만 여겨지던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올해 8월 한 시세조종꾼의 제보에서였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초기 난항을 겪었다. 4년 전 사건일 뿐 아니라 이미 김씨 등 관계자들끼리 입을 맞췄고, 결정적인 증거가 담겨 있을 휴대폰 등이 상당수 폐기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문 시세조종꾼들이 이 사건 외 다른 사건에 얽혀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과거 다른 사건으로 압수한 증거물에서 관련 증거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검찰은 피고인들 간 통화가 이뤄진 지 수분 내 양측에서 각각 매도 매수 주문을 넣은 통정매매가 이뤄진 근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검찰 관계자는 “시세조종꾼들은 압수수색 대비 매뉴얼까지 갖춰놓고 증거를 인멸해 갈수록 수사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시세조종 세력 엄단을 위해 빠르고 명확한 증거확보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