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자마자 전직원 만나…대화 나누는데만 6개월 걸렸죠"
올해로 올림푸스에 입사한 지 33년이 된 오카다 대표는 줄곧 내시경사업부에서 근무했다. 카메라업체들이 스마트폰에 밀려 추락하는 사이 올림푸스가 의료기기업체로 변신하는 데 일조했다. 그를 빼놓고는 의료기기사업의 성장사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다. 오카다 대표는 “입사 당시 일본을 통틀어 내시경 전문 교수가 세 명뿐이었다”며 “내시경 검사를 통해 많은 사람이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길을 닦아온 것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2년째 올림푸스한국을 이끌고 있는 오카다 대표를 서울 삼성동의 한 이자카야에서 만났다.
◆개구쟁이로 자란 홋카이도 ‘촌놈’
이자카야 하마초(濱蝶)는 오카다 대표의 단골집이다. 좌석이 20석 남짓밖에 안 되는 가게는 일본 뒷골목에 있을 법한 술집이었다. 은은한 주황빛 조명과 인테리어는 1970~80년대 일본 술집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잔잔하게 깔리는 일본 쇼와(昭和)시대(1926~1989년)의 복고풍 음악은 옛 정취를 더 자극했다. 오카다 대표는 “전임 올림푸스한국 대표 소개로 2년 전 알게 됐다”며 “서울에서 일본의 복고풍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먼저 감자 고로케(크로켓)를 주문했다. 그는 “바삭한 튀김 옷에 부드러운 감자로 속이 꽉 찬 고로케가 이 가게의 명물”이라며 “이 가게는 강원도에서 가져온 감자를 쓰는데 홋카이도 감자보다 맛이 더 좋다”고 했다. 오카다 대표는 홋카이도 출신이다. 삿포로에서 태어나 공항이 있는 지토세에서 자랐다. 그는 “홋카이도는 강원도와 마찬가지로 감자 산지로 유명하다”며 “이곳에서 감자 고로케를 먹을 때면 고향 생각이 난다”고 했다.
홋카이도의 드넓은 들판은 그의 놀이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대학(도쿄도립대)을 가기 전까지 홋카이도에서 자랐다. 친구들과 진흙탕을 구르던 개구쟁이였다. 검도 야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런왕 왕정치 선수를 동경해 야구를 특히 좋아했다”고 했다.
◆문외한에서 내시경 전문가로
그가 올림푸스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교사이던 아버지에게서 생일선물로 올림푸스 카메라를 선물받았다. 그는 “당시 초등학생이 카메라를 선물받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며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고 회상했다. 카메라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자연스레 동경으로 이어졌다. 선망의 대상이던 카메라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되는 게 꿈이었다.
1984년 대학을 졸업하고 카메라 영업맨을 꿈꾸며 올림푸스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가 배치받은 부서는 카메라가 아니라 내시경사업부였다. 내시경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던 그였다. 올림푸스는 1950년 세계 최초로 내시경 의료기기 제품을 상용화했지만 오랫동안 병원에서 외면받았다. 그는 “내시경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때여서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는 의사도 찾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했다. 당시 올림푸스는 카메라와 현미경사업이 주력이었다. 매출의 절반은 카메라에서 나왔다. 내시경사업부는 현미경사업부보다도 규모가 작았다.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오카다 대표는 “영업을 위해 내시경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한다는 보람도 느꼈다”고 했다. 영업사원의 길은 고단했다. 출입 금지는 예사였다.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쫓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는 “내시경을 보급해 암을 박멸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며 웃었다. 그때 고객으로 만난 의사들과는 지금까지도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오카다 대표는 일본 내시경 보급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신사업팀에 근무할 때였다. 그는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소 병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렌털 영업을 고안했다. 그는 “내시경 기기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기 때문에 동네 의원은 물론 대학병원들도 부담스러워했다”며 “기기값의 20%만 먼저 받고 사용 횟수에 따라 돈을 받는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푸스는 일본에선 아직도 이 방식으로 내시경 대부분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 직원 역량 뛰어나…팀워크는 약점”
숙주나물과 생강을 넣고 볶은 돼지고기 요리가 나왔다. 오카다 대표는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가 돼지고기의 맛을 풍부하게 해준다”고 소개했다. 일본식 소주 ‘오카이치’도 주문했다. 고구마로 빚은 술이다. 그는 컵에 얼음을 담아 술을 부어 마시는 ‘온 더 록’을 추천했다. 그는 “한국식 소주 중에서는 ‘화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오카다 대표는 2011년 올림푸스중국 부사장에 취임한 뒤 지금까지 7년째 가족과 떨어져 해외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가족이 생각날 때면 일본식 소주로 외로움을 달랜다”고 했다.
소금 간이 된 고등어구이도 나왔다. 오카다 대표는 “한국산 고등어는 일본산 고등어보다 기름지고 큰 편”이라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그는 인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오카다 대표는 “올림푸스한국 직원들은 세계 다른 올림푸스 직원과 비교해 개인 능력이 출중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팀워크를 발휘할 때는 동료들과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시한다. 2015년 한국에 부임해 가장 먼저 한 일이 직원들과의 면담이었다. 직원 400여 명 전원과 대화를 나누는 데만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직원들의 건의사항이나 아이디어는 경영에 적극 반영한다. 지난 9월 사옥을 서울 삼성동에서 서초동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기계식 주차장이어서 주차와 출차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판촉물을 차량에 싣기도 불편하다는 불만을 듣고 곧바로 사옥 이전을 지시했다. 한국말이 서툰 오카다 대표는 직원들과 대화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전문통역사 두 명을 고용했다. 그는 “한국지사 임직원의 뛰어난 역량 덕분에 올림푸스한국은 해마다 경영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며 “해외법인의 귀감이 되도록 팀워크 역량을 강화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의사들에게 영감 받겠다”
오카다 대표가 최근 공을 들이는 곳은 지난달 인천 송도에 세운 의료기기 트레이닝센터 K-TEC다. 올림푸스가 여섯 번째로 설립한 트레이닝센터로 중국 광저우 센터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곳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찾는 외국 의료인을 대상으로 내시경 검사 및 시술 관련 트레이닝을 한다. 관련 학회도 열린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대한비뇨기과학회 대한외과학회 등과 협약을 맺었다.
한국에 대규모 트레이닝센터를 세운 배경은 높은 의료 수준 때문이다. 오카다 대표는 “한국에 부임하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세계적인 수술 대가들이 한국에 다 모여 있다”며 “최첨단 의료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한국에 테스트베드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올림푸스가 내시경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된 데는 ‘현장’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오카다 대표는 “올림푸스는 연구개발(R&D) 단계부터 의료진과 소통하는 과정을 중시한다”며 “영업사원이 의사를 만날 때는 R&D 담당자와 함께 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의사와 환자들이 현장에서 내시경 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해 제품 개발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이 올림푸스가 내시경 기기 세계 최강자가 된 비결이라는 게 오카다 대표의 설명이다. ■ 올림푸스, 내시경 세계 첫 상용화…카메라서 의료기기 업체로 변신
올림푸스는 1919년 현미경회사로 출발했다. 1936년 카메라사업에 뛰어들었다. 올림푸스의 주력 분야로 성장한 내시경사업을 시작한 것은 1950년이다. 세계 최초로 내시경 의료기기를 상용화했다. 의료계에 내시경 의료기기가 보급되면서 올림푸스는 빠르게 의료기기회사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올림푸스가 올린 매출 8051억엔(약 8조원)의 76%가 의료기기사업부에서 나왔다.
2000년 설립된 한국법인은 여섯 번째 해외법인이다. 임직원은 400여 명이다. 2015년 취임한 오카다 나오키 대표는 한국 의료계와의 교류를 강조한다. 높은 수술 실력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인천 송도에 트레이닝센터 K-TEC를 열어 교육과 함께 공동 연구개발(R&D)을 통해 협력 관계를 강화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 오카다 대표의 단골집 하마초
日 복고풍 이자카야…강원도 감자로 만든 고로케 '일품'
2009년 문을 연 이자카야 하마초(濱蝶)는 서울 삼성동 삼성중앙역 3번 출구에서 청담동 방향으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대로 뒤편 한적한 골목길에 있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1970~80년대 일본 이자카야 풍경이 펼쳐진다.
20석 남짓한 작은 가게는 옻칠을 한 예스러운 인테리어에 엔카를 비롯해 사잔올스타즈, 블루라이트요코하마 등 일본 쇼와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멋스러움을 더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중장년 일본인이 많다. 영화감독 봉준호, 가수 비도 이 집을 자주 찾는다.
인기 메뉴는 수제 고로케(크로켓)다. 강원도 감자로 만든 반죽에 튀김가루를 묻혀 튀겨낸 방식이 일본식 그대로다. 사이드 메뉴로 개발했지만 대표 메뉴가 됐다. 특히 일본인에게 인기가 좋다.
하마초의 또 다른 명물은 고등어 요리다. 초절임 요리인 시메사바(2만5000원), 소금간을 해 구워낸 시오야키(2만원) 등이 대표 메뉴다. 고등어에 살이 오르는 겨울철이 되면 맛이 한층 더 풍부해진다. 도미머리졸임(3만5000원)도 많이 찾는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