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정부주도와 민간주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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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 벤처 왜곡시켰나
김동연의 공허한 '민간주도론'
지대추구에 멍든 '창업국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김동연의 공허한 '민간주도론'
지대추구에 멍든 '창업국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윌리엄 보몰은 한 국가에서 기업가의 공급량 자체보다 그 성격과 분포에 주목한 경제학자다. 결론은 기업가의 사회적 기여도는 ‘혁신’과 같은 생산적 활동을 추구하느냐, ‘지대(rent)’와 같은 비생산적 활동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확 달라진다는 것이다. 보몰의 분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국의 산업혁명 등 역사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사회에서 어느 쪽 기업가 활동이 더 많은지는 보상구조와 관련 있다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보몰의 관찰은 다른 학자들의 연구로 이어지며 ‘시장적 기업가냐, 정치적 기업가냐’ 논쟁으로 확장된다.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시장적 기업가와 달리 정치적 기업가는 정부 보조금 획득 로비나 규제를 동원한 경쟁자 배제 등으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정치적 기업가는 대개 정권이 바뀌는 틈을 타 득세하며 관료·정치인을 닮았다는 주장도 등장한다.
어느 나라든 비생산적·정치적 기업가가 생산적·시장적 기업가를 압도할 경우 신제품, 신시장 등 이른바 ‘슘페터형 혁신’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정부 정책이 가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 무조건 기업가의 공급량을 늘릴 게 아니라 사회적 보상이 생산적·시장적 기업가가 많이 쏟아지는 쪽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벤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2016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3만1189개 업체 중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보증·대출로 벤처가 된 기업이 93.9%였다. 반면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아 벤처가 된 기업 비율은 2.7%였다. 엄밀히 말하면 시장이 인증하는 벤처는 2.7%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연구개발투자로 벤처가 된 기업(3.4%)을 합치더라도 10%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동안 정부는 ‘생계형’이 아니라 ‘기회추구형’ 창업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기회추구형 창업도 추구하는 ‘기회’가 무엇이냐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뉜다. 정책금융기관이 인증한 벤처와 시장이 인증한 벤처가 추구하는 기회가 같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정부는 이런 차이를 일체 무시한 채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벤처를 찍어내기 바빴다. 한국 벤처를 왜곡한 건 다름아닌 정부다. 그렇다면 정부는 부인할 수 없는 ‘정책실패’에 얼마나 반성하고 있을까.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혁신창업 생태계를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적으로 치면 개종에 가깝다고 해야 할 ‘패러다임 전환’이란 표현까지 썼다. 그래서 상상을 해 봤다. 혹시 “미국처럼 벤처투자의 주된 회수창구인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 규제를 파격적으로 푸는 것일까?” “더 이상 재정·정책금융을 동원하지 않고 민간 벤처캐피털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복안인가?” “벤처확인제도를 전격 폐지하는 대신 시장에서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은 기업이 곧 벤처라고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시장에서 말하는 민간 주도 혁신생태계란 정부가 아니라 벤처캐피털, 대기업 등이 과감하게 모험투자에 나서는 환경을 의미하니까.
유감스럽게도 정부가 발표한 혁신생태계는 민간 주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정부는 벤처를 인증하는 과정에 민간위원회 하나 끼워넣는 것으로 ‘민간 주도 벤처확인’이라고 말한다. 재정·정책금융을 대거 동원해 모험자본을 공급하겠다는 것도 지난 정권들의 정책과 판박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를 확 늘려 정부가 ‘제2 벤처붐’을 만들겠다는 식이다.
정부는 변하지 않았다. 정치 역시 보수니 진보니 떠들지만 정권만 잡으면 민간 주도와 담을 쌓기는 매한가지다. 정부도 정치도 거대한 규제, 눈먼 보조금 등으로 왜곡된 사회적 보상구조를 뜯어고칠 생각이 없다. 한국에선 정치인·관료 자신들이 지대를 추구하는 정치적 기업가가 된 지 오래일지 모른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보몰의 관찰은 다른 학자들의 연구로 이어지며 ‘시장적 기업가냐, 정치적 기업가냐’ 논쟁으로 확장된다.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시장적 기업가와 달리 정치적 기업가는 정부 보조금 획득 로비나 규제를 동원한 경쟁자 배제 등으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정치적 기업가는 대개 정권이 바뀌는 틈을 타 득세하며 관료·정치인을 닮았다는 주장도 등장한다.
어느 나라든 비생산적·정치적 기업가가 생산적·시장적 기업가를 압도할 경우 신제품, 신시장 등 이른바 ‘슘페터형 혁신’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정부 정책이 가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 무조건 기업가의 공급량을 늘릴 게 아니라 사회적 보상이 생산적·시장적 기업가가 많이 쏟아지는 쪽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벤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2016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3만1189개 업체 중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보증·대출로 벤처가 된 기업이 93.9%였다. 반면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아 벤처가 된 기업 비율은 2.7%였다. 엄밀히 말하면 시장이 인증하는 벤처는 2.7%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연구개발투자로 벤처가 된 기업(3.4%)을 합치더라도 10%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동안 정부는 ‘생계형’이 아니라 ‘기회추구형’ 창업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기회추구형 창업도 추구하는 ‘기회’가 무엇이냐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뉜다. 정책금융기관이 인증한 벤처와 시장이 인증한 벤처가 추구하는 기회가 같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정부는 이런 차이를 일체 무시한 채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벤처를 찍어내기 바빴다. 한국 벤처를 왜곡한 건 다름아닌 정부다. 그렇다면 정부는 부인할 수 없는 ‘정책실패’에 얼마나 반성하고 있을까.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혁신창업 생태계를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적으로 치면 개종에 가깝다고 해야 할 ‘패러다임 전환’이란 표현까지 썼다. 그래서 상상을 해 봤다. 혹시 “미국처럼 벤처투자의 주된 회수창구인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 규제를 파격적으로 푸는 것일까?” “더 이상 재정·정책금융을 동원하지 않고 민간 벤처캐피털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복안인가?” “벤처확인제도를 전격 폐지하는 대신 시장에서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은 기업이 곧 벤처라고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시장에서 말하는 민간 주도 혁신생태계란 정부가 아니라 벤처캐피털, 대기업 등이 과감하게 모험투자에 나서는 환경을 의미하니까.
유감스럽게도 정부가 발표한 혁신생태계는 민간 주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정부는 벤처를 인증하는 과정에 민간위원회 하나 끼워넣는 것으로 ‘민간 주도 벤처확인’이라고 말한다. 재정·정책금융을 대거 동원해 모험자본을 공급하겠다는 것도 지난 정권들의 정책과 판박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를 확 늘려 정부가 ‘제2 벤처붐’을 만들겠다는 식이다.
정부는 변하지 않았다. 정치 역시 보수니 진보니 떠들지만 정권만 잡으면 민간 주도와 담을 쌓기는 매한가지다. 정부도 정치도 거대한 규제, 눈먼 보조금 등으로 왜곡된 사회적 보상구조를 뜯어고칠 생각이 없다. 한국에선 정치인·관료 자신들이 지대를 추구하는 정치적 기업가가 된 지 오래일지 모른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