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투자은행(IB) 출범을 눈앞에 두고 은행과 증권업계가 또다시 충돌했다. 오는 13일 한국투자증권의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업무 등) 최종 인가를 나흘 앞두고서다.

은행연합회 "업무 영역 침해" vs 금융투자협회 "은행이 외면한 기업 지원"
은행연합회는 9일 성명서를 내고 “시중은행이 하는 업무 영역을 증권사가 침해하는 것으로 인가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증권·자산운용사가 회원사인 금융투자협회는 “은행이 대출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돕기 위해 초대형 IB가 출범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인가권이 있는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초대형 IB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기업 육성 방안인 ‘혁신창업 생태계’ 구축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시중은행 상품 팔겠다는 것”

은행연합회는 이날 “초대형 IB의 단기금융업은 일반 투자자에게 원금 보장 상품을 팔아 기업에 대출하는 것으로 시중은행 업무와 다를 바 없다”며 “금융위는 13일로 예정된 단기금융업 인가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1일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발행어음 업무 인가안을 의결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석하는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인가안이 통과되면 발행어음을 판매할 수 있다.

은행연합회 측은 다음달 발표 예정인 금융위 금융행정혁신위원회 권고안을 들어본 뒤 발행어음 업무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혁신위는 지난달 금융위에 대한 1차 권고에서 초대형 IB와 관련해 은행과 증권의 형평성 및 건전성 규제 문제 등을 지적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혁신위 의견을 듣지 않고 인가해주면 최종 권고안이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

금투협은 은행업계의 주장을 곧바로 반박했다. 우선 초대형 IB의 발행어음은 원금보장 상품이 아니라고 했다. 금투협 관계자는 “예금은 은행이 파산하면 예금보험공사가 5000만원까지 원금과 이자를 보호해주지만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파산하면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들 “중견기업 투자에 집중”

금투협은 초대형 IB와 은행 간 업무 영역이 겹칠 것이란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증권사들의 발행어음 조달 비용이 은행보다 큰 만큼 은행과는 달리 투자수익이 높은 중견기업 투자(대출 등 금융지원)에 집중할 것이라는 얘기다.

초대형 IB 업무 인가를 신청한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5개 회사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이들은 조달 자금의 33%와 24%를 각각 중위험(신용등급 A급 이하) 채권 투자와 중견기업 대출에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초대형 IB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자기자본의 50% 이상을 기업금융 관련 자산에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황영기 금투협회장은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기업은 은행을 이용하는 기업과 신용 등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어 은행의 업무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금융위 정례회의를 불과 나흘 앞두고 은행업계의 반대 주장이 나온 것에 발끈하는 분위기다. 초대형 IB 인가를 신청한 5개 증권사의 투자금(인수합병 및 증자비용)만 4조6000억원에 달한다. 대형 증권사의 한 임원은 “대관 업무 능력이 뛰어난 은행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초대형 IB의 사업 영역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의심했다.

증권업계는 1일 증선위에서 의결된 발행어음 업무 인가안이 정례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증선위 의결 사안이 별다른 이유 없이 뒤집어진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도 “심사가 끝난 증권사부터 차례로 초대형 IB 인가를 내줄 계획”이라며 “당초 계획과 달라진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 발행어음

증권사나 종합금융회사가 영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회사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일반 투자자에게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단기 금융상품.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은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김우섭/박종서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