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노동조합이 사외이사 추천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려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회사인 ISS로부터 제동이 걸렸다. ISS는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한 노조의 제안에 “정치 경력이나 비영리단체 활동 이력이 금융지주사 이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지 불명확하다”고 배제 사유를 밝혔다.

ISS는 “지주사 대표이사가 이사회 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정관을 바꾸자”는 노조의 다른 제안에도 반대의견을 냈다. “CEO 선임 등 계열사에 대한 대표이사 역할을 줄이는 것은 주주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지분율 0.18%의 우리사주조합 주식을 위임받은 노조가 주주제안 형식으로 경영에 참여하려다 국제적인 의결권 자문사에 호되게 당한 꼴이다.

KB금융 주식의 69%를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 다수가 ISS의 판단을 따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노조의 경영권 간섭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난 9일 금융노조와 이용득·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노조가 추천 인사를 이사로 내세워 경영에 참여토록 하자는 것이었다.

경영 참여를 향한 은행 노조의 거침없는 행보는 현 정부 들어 목소리가 커진 상급 노조단체들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KEB하나은행 노조는 ‘정유라 특혜 대출’을 주장하며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에 대한 제재요청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하고 검찰 고발까지 준비 중이라고 한다. KB금융 노조도 지주사 회장을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했다.

수십 년 관치(官治)에다 툭하면 낙하산 인사를 보내는 정치권의 개입도 적폐인 판에 ‘노치(勞治)금융’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 경영권이 흔들리면 기업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은행은 잘못되면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다른 어떤 경제부문보다 전문성과 효율성, 독립성과 자율성이 강조되는 곳이 금융산업이다. 나날이 발달하는 핀테크 와중에 한국의 ‘금융 성숙도’(137개국 중 74위, 세계경제포럼 10월 발표)는 완전 후진국이다. 은행 경쟁력은 언제 키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