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리십니까.”

지난 11일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다낭 크라운플라자호텔 회담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회담 시작 후 문재인 대통령의 동시통역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직접 확인했다. 자신의 발언이 시작됐을 때 동시통역기가 준비되지 않은 문 대통령을 배려해 다시 한 번 인사를 건넨 것이다. 그리고 두 정상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맸다. 이날 정상회담은 예정시간을 13분가량 넘은 43분간 진행됐다.

◆시종일관 ‘훈훈’

한·중 정상은 한층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달 31일 한·중 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관련 ‘관계 개선 협의문’을 발표하고 11일 만에 이뤄졌다. 지난 7월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첫 만남 이후 4개월 만의 정상회담이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에게 먼저 “다시 만나 아주 기쁘다”며 “오늘 회동은 앞으로 양국 관계 발전과 한반도 문제에 있어 양측의 협력, 그리고 리더십 발휘에서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한국 속담과 ‘매경한고(梅經寒苦: 봄을 알리는 매화는 겨울 추위를 이겨낸다)’라는 중국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이어 “한·중 간에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도록 양측이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당초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사드가 의제로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 주석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한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시 주석이 한국 정부에 ‘3불(不) 원칙’과 관련해 ‘쐐기’를 박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31일 한·중 관계 협의문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3불 원칙은 양국 간 협의문에서 중국 측이 우리 정부에 요구한 세 가지 사항으로, △사드 추가배치 반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반대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 등이다.

◆중국,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이유는

양국 정상은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추가 논의를 이어가며 본격적인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로 했다. 또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번 회담만 놓고 보면 중국이 한국보다 양국 관계 개선에 더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촉즉발의 북핵 위기, 미·일 주도의 ‘인도·태평양 안보구상’ 급부상 등 동북아시아의 변화된 안보환경에서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필요성이 커졌다는 게 그 배경으로 꼽힌다.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라는 목표를 내건 중국으로선 한반도 무력 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데 중국이 기여하고 있다는 대내외적 평가가 필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러려면 한국과 손잡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열수 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중국도 북핵 문제가 자국 사활에 영향을 주는 핵심 위기를 불러일으킬 요인으로 보고 있다”며 “북핵 문제를 풀면 1차적으로 미국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계적 강국이 되려는 중국이 더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중국의 변화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앞으로 중국은 남북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형태로 갈 것”이라며 “그러려면 한반도에서 갈등을 일으키기보다 대화하면서 남북을 관리 가능한 체제로 전환하려고 할 것인 만큼 한국이 과거보다 중국의 영향력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소장은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명분을 얻고 실리를 줬다면 중국과의 관계에선 반대로 명분을 주고 실리를 얻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채연 기자/다낭=조미현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