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엔 생각할 시간 필요
홈쇼핑 한 시간 방송하면
쇼호스트 쉬는 10분 간에
전체 판매량 30~40% 나와
‘나도 모르게 구매 버튼을 눌렀다.’
TV 홈쇼핑에서 쇼호스트 말을 듣다가 ‘혹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구입해 본 경험을 한 번씩은 갖고 있다. 홈쇼핑 방송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안 사고는 못 배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쇼호스트의 한마디 한마디는 매출과 직결된다. 인기 쇼호스트 몸값이 프로야구 선수와 견줄 만큼 높은 이유다.
하지만 쇼호스트가 말을 계속 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말을 하지 않을 때 주문 전화가 더 많이 걸려온다. 소비자가 쇼호스트 설명을 듣고 구매하려면 ‘생각할 시간’과 ‘행동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를 ‘콜 투 액션(call to action)’이라 부른다.
1990년대 국내에 TV 홈쇼핑이 처음 도입된 시기에는 쇼호스트가 쉬지 않고 얘기했다. 조금이라도 더 상품에 대해 알리고 설명해야 매출이 오른다고 믿었다. 방송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쇼호스트는 계속 말을 해야 했다.
이런 믿음을 깨는 일이 발생했다. 한 홈쇼핑 방송에서 PD가 ‘쇼호스트도 사람인데 쉴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방송 도중에 쇼호스트가 말하는 것을 중단시키고 대신 그 시간에 상품 사진과 가격 등 상품 정보를 넣은 자막을 올렸다.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주문 전화가 쇄도했다.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이 홈쇼핑사는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쇼호스트에게 쉬는 시간을 줬다. 매출이 올랐다.
이 일을 계기로 홈쇼핑 회사들은 알아차렸다. 주문을 하려면 소비자들에게 생각하고 행동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을. 2000년대 초반의 얘기다.
지금도 대부분의 홈쇼핑 방송이 주문할 수 있는 시간을 별도로 준다. 한 시간 방송에 평균 3~4회 정도 쇼호스트가 쉬는 시간이 있다. 이 10분 정도 시간에 전체 판매량의 30~40%가 나온다. 쇼호스트가 쉬는 동안 화면에는 상품을 시연하는 장면이 주로 나온다.
패션 상품의 경우 모델이 입은 옷을 비춘다. 식품은 주방에서 요리하는 장면이 나간다. 화장품은 사용 전후의 비교 사진을 보여준다. ‘매진 임박’ 등 소비자의 구매를 자극하는 문구도 집중적으로 이 시간에 내보낸다.
‘콜 투 액션’에 숨어 있는 심리학적 요소는 편도체의 반응이다. 미국 심리학자들은 물건을 사려고 집어들 때 뇌의 부위 중 편도체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편도체는 공포 위험 불안감 등을 처리한다. 누를까 말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공포와 연관돼 있다. 일단 구매 욕구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이를 잠시 줄여줌으로써 좋아하는 물건을 망설임 없이 구매하게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다만 최근에는 콜 투 액션 시간에 과거처럼 극적으로 판매량이 늘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는 사람이 많아진 영향이다. 홈쇼핑에서 모바일 매출 비중은 현재 50%에 육박한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