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대 말 우리나라에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연암 박지원이 현재의 베이징(北京)인 연경을 오가며 살핀 내용을 기록한 《열하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무역의 효과를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국제무역의 기초이론인 ‘비교우위론’을 1817년에 발표한 것을 고려하면 그 당시로서는 놀라운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우리가 일찍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였으면 한국에서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과 달리 개방을 통해 세계적인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웃 나라를 압박하는 한편 서방의 문물을 습득해 부국을 도모하고 있었다. 선박과 도로를 정비해 상업의 발전도 도모했다. 중국의 전통 과학과 기술 위에 서양의 것들을 받아들여 과학기술의 발달을 촉진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집권층인 양반은 경제보다 도덕을 중시하는 유교사상으로 인해 상공업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청나라는 오랑캐라는 의식이 강해 청나라의 선진문물조차 배격했다.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실학사상을 통해 조선을 발전시키고자 한 박지원과 같은 선각자의 주장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척화론자인 김상헌이 나라의 명분을 위해 오랑캐인 청나라와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 기개는 훌륭하나 멸망한 나라의 자존심은 어디서 찾고자 함이었던가. 최명길의 지혜와 김상헌의 기개가 어우러지지 못함이 아쉽다.
당시의 청나라는 현재의 중국과 비슷한 면이 있다. 힘으로 이웃을 견제하며 상업과 무역을 통해 경제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 그러하다. 오늘날 세계 최장 고속철도 건설을 통해 중국 땅을 일일생활권으로 묶어 상공업 발전을 도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유교사상에 얽매인 조선이 더는 아니다. 열하일기를 쓴 선각자의 후손이며 무역을 통해 세계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가 아닌가. 양국 정부 합의로 사드 보복의 실마리가 풀린 것은 다행이지만 유사 사태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이 우리에게 어떤 압박을 가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중국이 우리를 두려워할 상대로 만들 수 있는 기개와 지혜가 필요하다.
김정관 <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jkkim8798@kita.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