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의 '경영과 기술'] AR이 실공간과 가상공간 연결한다
오늘날 인터넷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은 사이버 공간(cyberspace)이다. 1980년대 초 공상과학소설 작가 윌리엄 깁슨이 창안한 말이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올 인류의 경험은 새로운 공간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혜안이 담겨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천적인 감성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존재들이다. 텍스트보다 공간 속에서 오감을 통해 더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공을 물리적 공간과 결합하려는 많은 노력이 제안됐으나 물리적 공간에 인터넷을 접목하는 일은 경제성 면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사례가 많다는 점은 이전의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반면 반대 방향의 연결은 주목받고 있다. 즉 실시간 공간을 가상공간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병태의 '경영과 기술'] AR이 실공간과 가상공간 연결한다
실시간 공간을 가상화하는 것은 실시간의 공간 이미지를 얼마나 취하느냐에 따라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로 나눈다. VR은 공간을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온전히 창조하는 데 비해 AR은 카메라에 잡힌 실시간 공간의 모습에 일부 CG와 정보를 입히는 방식이다.

VR의 성공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불리는 온라인 게임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젊은이들은 환상이 만든 공간에서 부족을 거느리고 괴물을 무찌르고 사랑을 나누고 거래를 하며 자란다. 초고속망이 다른 나라에 앞서 구축된 한국에서 이 분야를 선도해왔다. 2003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어른들을 위한 가상공간 부동산 사업자라고 볼 수 있는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아직도 90만 명 이상의 실사용자가 연간 6000만달러의 돈을 쓰고 있으며, 매년 5억달러 상당의 국내총생산(GDP)이 만들어지는 가상공간이다. 이런 가상공간의 성공은 ‘아바타’라는 영화를 통해 일반인에게 잘 알려졌다.

그런데 VR의 가장 큰 약점은 이 공간을 창조하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도구가 개발됐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노동의 투입이 필요해서 대중적 활용에 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VR을 볼 수 있는 특수한 기기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과 비용도 장애요인이다.

다른 한편으로 AR은 VR이 추구하는 판타지에서는 뒤지지만 경제성 면에서는 월등히 앞서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폭발적 인기로 주목받았던 ‘포켓몬고’는 AR의 장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카메라가 잡은 실시간 공간 위에 지도 정보와 간단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온 세상 젊은이들을 괴물 사냥꾼으로 나서게 했다. 실공간이 AR에 편입되는 순간 가상공간이라서 실공간의 제약은 사라진다. AR은 이런 실공간과 가상공간, 그리고 디지털 정보가 결합돼 공간적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습과 의사결정, 실시간 상호작용의 변화를 약속하고 있다. 우리가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주행 중 실공간의 사진 위에 길 안내를 위한 화살표와 거리를 표시해주면 더 안전하고 분명한 운행이 가능해지는 것에서 간단한 AR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AR을 수용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주로 눈을 가리는 불편한 헤드셋 디스플레이(HMD)였다. 스마트 기기의 화면과 안경 형태의 화면에서 AR의 대중적 수용이 가능한 기술이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다. 한때 주목받은 개인용 구글안경(Google Glass)은 사생활 침해와 안전상의 이유로 중단됐지만 기업용은 계속 개발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Hololens), 애플의 AR키트(ARKit), 구글의 AR코어(ARCore) 등 AR 개발의지를 드러내는 기술 플랫폼 개발이 지속되고 있고, 오스터아우트디자인그룹(ODG), 뷰직스(Vuzix), 메타(Meta) 등 스타트업들의 스마트 글라스 개발경쟁이 뜨겁다.

우리는 이미 실공간과 가상공간을 넘나들고, 어쩌면 가상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실공간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세대를 길러내고 있다. 복잡한 기계 조작을 위한 학습은 증강현실에서 디지털 가상의 복제된 쌍둥이 기기(digital twin)를 먼저 조작하면 이 디지털 복제기가 물리적 기계를 아바타처럼 조작하는, 그래서 다층의 공간을 통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학습하고 일하는 시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AR의 응용분야는 직관적인 제품 매뉴얼, 사용자교육, 특히 원격지 사용자교육 등 고객 서비스에서 조립작업의 안내, 품질보증과 안전 등의 제조과정, 고객에게 감성적 경험을 유도하는 마케팅 및 직업 훈련, 의료분야 교육과 수술 과정에서의 활용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결론적으로 사이버 공간과 실공간의 결합은 실공간을 가상공간 쪽으로 결합하는 것이 그 반대보다 먼저 오고 있고, 그것도 개인용보다 산업용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