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새 사옥 트렌드 '워라밸'
칸막이 없이 탁 트인 ‘열린 공간’,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스위스제 고급 의자, 혼자 집중하고 싶을 때 들어가 일에 몰입하는 ‘1인 공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산책할 수 있는 공중정원, 80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하는 식당과 카페, 130명을 수용하는 피트니스센터에 마사지룸, 힐링존까지….

그제 공개된 아모레퍼시픽의 신사옥 내부다. 설계의 초점은 일과 생활의 질을 동시에 높이는 ‘워라밸’에 맞췄다. 워라밸은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앞 글자를 딴 신조어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최근 기업의 사옥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기업 사옥을 문화공간으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는 구글 캠퍼스다. 미국 마운틴뷰에 있는 본사뿐만 아니라 새너제이에 새로 짓는 신사옥 콘셉트도 ‘꿈의 구글 빌리지’다. 네덜란드 캠퍼스에는 실내에 자전거 도로와 암벽 등반 코스가 있다. 런던 캠퍼스엔 댄스 스튜디오까지 들였다.

애플도 우주선 모양의 새 사옥에 대형 카페를 7개나 마련했다. 가장 큰 3층짜리 카페에는 3000명이 들어간다. 넓이는 1900㎡. 외부 테라스도 600~1750명이 활용할 수 있다. 하루에 제공하는 점심 식사만 1만5000여 명분이다. 초대형 웰니스·피트니스센터는 2만여 명이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다.

페이스북 신사옥은 ‘거대한 원룸’ 구조로 축구장 7개 크기의 세계 최대 개방형 오피스다. 사장실도 따로 없다. 본사 맞은 편 23만㎡ 부지에는 ‘윌로 캠퍼스’를 짓고 있다. 이곳엔 직원과 지역 주민을 위한 주택 1500채와 호텔, 식료품점, 약국, 체육관, 문화센터 등을 건립한다. 건물 사이엔 크고 작은 공원이 들어선다.

세계 최대 그래픽칩 제조사 엔비디아가 미국 샌타클래라에 짓는 신사옥도 ‘열린 문화 공간’ 속의 ‘움직이는 사무실’이다. 고급 휴식 공간은 기본이고, 수백 개의 삼각형 창문 덕분에 낮엔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고 쾌적하다. 직원들이 언제든 가변형 벽을 움직여 회의실이나 강당, 카페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IT(정보기술)기업을 중심으로 워라밸 사옥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네이버의 분당 사옥 그린팩토리와 다음카카오의 제주 본사 스페이스닷원 등이 ‘열린 디자인’을 활용한 사례다. 아모레퍼시픽의 개방형 업무 시스템과 입체 문화공간은 이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잘 지은 사옥에선 직원들의 창의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젊은 층일수록 더 민감하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988~1994년생 직장인인 ‘워라밸 세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며 내년 소비 트렌드의 하나로 ‘워라밸’을 선정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업무 공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