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행동경제학이 주목해야 할 박정희 시대
우리나라는 매년 10월 노벨상 시즌만 되면 언론과 지식인 사회가 요란을 떤다. 학문적 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린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건설과 경제 과학 사회 문화 다방면에서 창의적인 노력과 성과로 새로운 국가번영의 역사를 써온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우리가 이룬 것에 대한 자긍심은 고사하고 우리의 역사를 폄훼하고 허구한 날 외국 모방하기에만 혈안이 돼 있지 않나 싶다.

대한민국은 단순히 외국의 모델을 모방해 번영의 기적을 이룬 나라가 아니다. 아직까지도 ‘한강의 기적’ 원리는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세계문명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소재가 가득한 곳이 바로 한국의 발전사다. 20세기 문명사에서 한국에 견줄 만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를 일궈낸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국가기관이 나서서 해외 대학에 한국학센터를 세우거나 해외에 뭘 전수한다고 무작정 나설 일이 아니다. 그에 앞서 국내 유수 대학부터 한국학과를 만들어 우리를 제대로 알고 우리가 이룬 기적의 진정한 문명사적 의의를 탐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소위 선진국들의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대안문명학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많은 분야에서 인류공영에 기여할 노벨상급 연구 성과와 인재를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특히 노벨 경제학상에 유감이 있다. 최근 자유시장 중심의 주류 경제학은 세계적 저성장·양극화라는 난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노벨상은 행동경제학 분야의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행동경제학은 신상필벌의 인센티브 제도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오래된 진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세일러 교수는 정부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인센티브 구조를 잘 디자인함으로써 경제행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런 정부개입을 ‘넛지’(뒤뚱거리는 사람을 바로 가게 살짝 밀어준다)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부개입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개입은 적을수록 좋다는 시장중심 주류 경제학에는 심각한 도전인 셈이다.

그런데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런 행동경제학의 주장은 50년도 더 전 한국의 개발연대에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기반을 놓은 경제정책 원리 및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발연대 박정희 시대는 신상필벌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정의의 율법에 따라 성과에 기초한 인센티브 차별화를 통해 국민과 기업들에 동기를 부여하고 최단시간 최고의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기적 같은 수출의 증가, 불가능하다던 중화학공업화의 성공, 자조·자립정신을 창출해낸 새마을 운동의 성공 등 모두 이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야말로 오늘날 행동경제학의 주요 명제를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실천하고 또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30여 년간 이런 정책원리와 성과가 비민주적인 정부에서 이룬 것이라서 선진국 도약의 장애요인이라며 다 청산해 버렸다.

그런데 노벨위원회는 한국이 이미 버린 개발연대 정책원리에 대해 50년도 더 지나 노벨상의 값어치가 있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게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동안 한강의 기적을 주류 경제학의 예외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고 연구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던 한국 경제학계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학계에는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류 경제학계가 이를 깨닫고나 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한국의 학계도 사양길에 접어든 선진국 학자나 이론을 맹종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으로 연구·승화시키는 작업을 본격화해야 한다. 그러면 노벨상급 인재와 연구는 자연스럽게 길러지지 않겠는가.

좌승희 <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