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서울 농부… 강동구 23년차 채소농부 최재일 대표의 로컬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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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농부가 있을까. 의외로 많다. 3550개 농가가 있으며 이중 대부분의 수입을 농사를 통해 버는 전업농도 1199가구나 된다.(2016년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 가장 많이 재배하는 작물은 채소(1236가구)다. 쌀 농사 887가구, 감자 고구마 등 식량작물 638가구, 과일 458가구 등이 뒤를 잇는다.
강동구에서 23년째 채소 농사를 짓고 있는 최재일 강동도시농부 대표(42)를 만났다. 그는 1996년부터 서울 강동구 접경인 고덕동과 하남시 미사동 일대에서 쌈채소 등을 키우고 있다.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사용한다. 그가 주변 농민들과 함께 2011년 설립한 사회적기업 강동도시농부는 서울 동부권의 대표적인 ‘로컬 푸드’(인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 생산·유통업체로 꼽힌다.
최 대표는 3개의 밭에서 총 5000여 평(1만6500여㎡) 규모의 유리온실 및 비닐하우스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온실 안에서 적근대 비트 로메인상추 공심채 등 다양한 쌈채소를 키운다. 서울권 온실 중에서 최대 규모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덕동 일대가 주거지로 본격 개발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엔 농장 규모가 1만2000평(3만9600㎡)에 달했다.
20대 초반부터 서울에서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4남매를 혼자 키우셨어요. 처음엔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농산물을 사다 파는 일을 하셨는데 강동구 쪽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면 수입이 괜찮다는 얘기를 들으시곤 이쪽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날 새벽에 딴 신선한 채소들이라 상인들한테 인기가 좋았어요. 가까운 천호동이나 길동 인근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상인들이 아침에 사갔어요. 어머니가 비닐하우스 규모를 3000평까지 늘렸습니다.”
그는 처음엔 농사 지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생각이 바뀐 건 군대 가기 직전이었어요. 영장이 나와서 군대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태풍이 와서 비닐하우스가 모두 무너져버렸어요. 어머니를 도와 하우스를 고치는데 ‘농사짓는 게 여자 혼자 하기에는 정말 힘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마음먹고 군대를 갔다가 제대하고선 계속 농사를 짓고 있어요.” 최 대표가 농사일에 본격 뛰어든 건 22세이던 1996년부터다. 그가 농장에 합류하면서 농장 운영도 활기를 띠게 된다. 농장 일을 도맡아 하게 된 그는 천연 비료만으로 채소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친환경 재배가 갈수록 유망해지고 지역 공동체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는 로컬푸드 방식이야말로 앞으로 농업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 때부터 이미 로컬푸드를 해왔던 것 같아요. 저희 농장의 채소들은 대부분 강동구 안에서 소비됐으니까요. 나랑 얼굴 보고 사는 이웃들이 먹는 건데 더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주변 농가들과 함께 사회적기업을 설립한 것도 친환경 쌈채소를 인근 지역에 판매할 수 있는 안정적인 유통망을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최 대표는 “처음 친환경 농사를 지을 땐 어려움이 많았다”며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벌레도 쉽게 생기고 유통 과정이 조금만 길어지면 빨리 시들어 제 값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회사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 서울 지역 신세계백화점 식품관에 ‘강동도시농부 아침 야채’란 브랜드를 달고 채소를 납품했다. 그날 새벽에 딴 채소를 오전 10시 매장 개점 시간에 맞춰 매대에 올린다는 게 백화점 상품기획자의 전략이었다. 소비자 반응도 좋았다. 2015년엔 서울시가 시내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예비사회적기업 부문 우수기업으로도 선정됐다. 강동구 지역을 중심으로 27개 어린이집에 채소를 포함한 각종 식자재를 공급하고 있다. 연 매출은 최대 10억원에 이른다. 그는 이 같은 성과를 거두기까지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 여파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1년 강동구 둔촌동에 차렸던 농산물 판매장은 적자에 시달리다 문을 닫았다. 첫 번째 매장이 실패한 후 규모를 줄여서 상일동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인근에 개설했던 두 번째 매장도 올해 초 장사를 접었다. 채소 중심의 매장이어서 한 곳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다. 최 대표는 “매장을 운영하면서 1억 정도는 까먹은 거 같다”고 했다.
고객들에게 채소를 포함해 두부, 콩나물, 계란, 버섯 등 각종 농산물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꾸러미 사업에도 뛰어들었지만 중단해야만 했다. 고정 고객이 80여 명에 달했지만 문제는 잘못된 원가 계산이었다. 택배비를 건지기도 빠듯했다. 고객이 늘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였다.
최 대표가 사업 초기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강동구 내 복지시설에 쌈채소를 기부하는 것이다. 격주마다 기부하는 곳이 120여 곳에 달한다. 직접 기른 채소들 중에서 크기가 조금 크거나 작은 채소 등을 따로 모아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한다. 친환경 농산물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사먹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로컬푸드 농업이 갖는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물었다. 많은 인구가 대도시에 몰려 사는 현실에서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로컬푸드라고 하면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만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대도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지방 중소도시에도 도심과 농촌 지역이 따로 있잖아요. 어디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산물을 사 먹을 수밖에 없는 거고요. 농민들은 가까운 지역에다 채소를 팔고 싶어도 판로가 없어서 못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결국 농산물을 도매 상인들에게 팔게 되고 농산물은 몇 단계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가격도 비싸집니다. 농민들이 지역 사회에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유통망을 갖게 되면 좀 더 신선하고 건강한 채소를 정직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요.”
최 대표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농장에서 키우는 각종 쌈채소와 허브 등을 안정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베트남 음식 식당을 차리기로 결정했다. 채소만 팔다가 문을 닫아야 했던 앞선 두 매장의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농사지을 때보다 신경써야 할 일이 훨씬 많지만 그래도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재밌어요. 비닐하우스 농장의 일정 부분을 분양해서 사람들이 직접 쌈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도 생각 중이에요.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키운 농산물을 맛보게 되면 사람들이 로컬푸드의 가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FARM 홍선표 기자
전문은 ☞ blog.naver.com/nong-up/221129940735
강동구에서 23년째 채소 농사를 짓고 있는 최재일 강동도시농부 대표(42)를 만났다. 그는 1996년부터 서울 강동구 접경인 고덕동과 하남시 미사동 일대에서 쌈채소 등을 키우고 있다.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사용한다. 그가 주변 농민들과 함께 2011년 설립한 사회적기업 강동도시농부는 서울 동부권의 대표적인 ‘로컬 푸드’(인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 생산·유통업체로 꼽힌다.
최 대표는 3개의 밭에서 총 5000여 평(1만6500여㎡) 규모의 유리온실 및 비닐하우스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온실 안에서 적근대 비트 로메인상추 공심채 등 다양한 쌈채소를 키운다. 서울권 온실 중에서 최대 규모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덕동 일대가 주거지로 본격 개발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엔 농장 규모가 1만2000평(3만9600㎡)에 달했다.
20대 초반부터 서울에서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4남매를 혼자 키우셨어요. 처음엔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농산물을 사다 파는 일을 하셨는데 강동구 쪽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면 수입이 괜찮다는 얘기를 들으시곤 이쪽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날 새벽에 딴 신선한 채소들이라 상인들한테 인기가 좋았어요. 가까운 천호동이나 길동 인근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상인들이 아침에 사갔어요. 어머니가 비닐하우스 규모를 3000평까지 늘렸습니다.”
그는 처음엔 농사 지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생각이 바뀐 건 군대 가기 직전이었어요. 영장이 나와서 군대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태풍이 와서 비닐하우스가 모두 무너져버렸어요. 어머니를 도와 하우스를 고치는데 ‘농사짓는 게 여자 혼자 하기에는 정말 힘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마음먹고 군대를 갔다가 제대하고선 계속 농사를 짓고 있어요.” 최 대표가 농사일에 본격 뛰어든 건 22세이던 1996년부터다. 그가 농장에 합류하면서 농장 운영도 활기를 띠게 된다. 농장 일을 도맡아 하게 된 그는 천연 비료만으로 채소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친환경 재배가 갈수록 유망해지고 지역 공동체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는 로컬푸드 방식이야말로 앞으로 농업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 때부터 이미 로컬푸드를 해왔던 것 같아요. 저희 농장의 채소들은 대부분 강동구 안에서 소비됐으니까요. 나랑 얼굴 보고 사는 이웃들이 먹는 건데 더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주변 농가들과 함께 사회적기업을 설립한 것도 친환경 쌈채소를 인근 지역에 판매할 수 있는 안정적인 유통망을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최 대표는 “처음 친환경 농사를 지을 땐 어려움이 많았다”며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벌레도 쉽게 생기고 유통 과정이 조금만 길어지면 빨리 시들어 제 값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회사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 서울 지역 신세계백화점 식품관에 ‘강동도시농부 아침 야채’란 브랜드를 달고 채소를 납품했다. 그날 새벽에 딴 채소를 오전 10시 매장 개점 시간에 맞춰 매대에 올린다는 게 백화점 상품기획자의 전략이었다. 소비자 반응도 좋았다. 2015년엔 서울시가 시내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예비사회적기업 부문 우수기업으로도 선정됐다. 강동구 지역을 중심으로 27개 어린이집에 채소를 포함한 각종 식자재를 공급하고 있다. 연 매출은 최대 10억원에 이른다. 그는 이 같은 성과를 거두기까지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 여파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1년 강동구 둔촌동에 차렸던 농산물 판매장은 적자에 시달리다 문을 닫았다. 첫 번째 매장이 실패한 후 규모를 줄여서 상일동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인근에 개설했던 두 번째 매장도 올해 초 장사를 접었다. 채소 중심의 매장이어서 한 곳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다. 최 대표는 “매장을 운영하면서 1억 정도는 까먹은 거 같다”고 했다.
고객들에게 채소를 포함해 두부, 콩나물, 계란, 버섯 등 각종 농산물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꾸러미 사업에도 뛰어들었지만 중단해야만 했다. 고정 고객이 80여 명에 달했지만 문제는 잘못된 원가 계산이었다. 택배비를 건지기도 빠듯했다. 고객이 늘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였다.
최 대표가 사업 초기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강동구 내 복지시설에 쌈채소를 기부하는 것이다. 격주마다 기부하는 곳이 120여 곳에 달한다. 직접 기른 채소들 중에서 크기가 조금 크거나 작은 채소 등을 따로 모아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한다. 친환경 농산물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사먹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로컬푸드 농업이 갖는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물었다. 많은 인구가 대도시에 몰려 사는 현실에서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로컬푸드라고 하면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만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대도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지방 중소도시에도 도심과 농촌 지역이 따로 있잖아요. 어디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산물을 사 먹을 수밖에 없는 거고요. 농민들은 가까운 지역에다 채소를 팔고 싶어도 판로가 없어서 못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결국 농산물을 도매 상인들에게 팔게 되고 농산물은 몇 단계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가격도 비싸집니다. 농민들이 지역 사회에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유통망을 갖게 되면 좀 더 신선하고 건강한 채소를 정직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요.”
최 대표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농장에서 키우는 각종 쌈채소와 허브 등을 안정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베트남 음식 식당을 차리기로 결정했다. 채소만 팔다가 문을 닫아야 했던 앞선 두 매장의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농사지을 때보다 신경써야 할 일이 훨씬 많지만 그래도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재밌어요. 비닐하우스 농장의 일정 부분을 분양해서 사람들이 직접 쌈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도 생각 중이에요.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키운 농산물을 맛보게 되면 사람들이 로컬푸드의 가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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