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산 건 창업가 정신"…월마트 바꾼 '33억달러 베팅'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혁신성장 기업인이 이끈다
월마트 혁신 이끄는 더그 맥밀런·마크 로어
월마트 혁신 이끄는 더그 맥밀런·마크 로어
미국을 대표하는 유통업체 월마트의 전자상거래 사업은 대표가 따로 있다. 마크 로어라는 인물이다.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유통업계에선 제프 베저스 아마존 창업자에 버금가는 거물로 꼽힌다.
지지부진하던 월마트의 온라인 판매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로어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월마트는 작년 8월 창립 1년도 안 된 전자상거래 회사 제트닷컴을 33억달러에 사들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월마트의 인수합병(M&A) 사상 최고가였다. 목적은 제트닷컴이 아니었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제트닷컴의 가능성이 아니라 로어의 전문성과 창업가 정신을 월마트에 들여오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로어도 악연이 있는 ‘베저스 타도’를 위해 맥밀런과 의기투합했다.
아마존 덤핑에 ‘눈물의 매각’
로어는 2005년 친구와 퀴드시(Quidsi)라는 전자상거래 회사를 세운 뒤 온라인 쇼핑몰인 다이아퍼스닷컴(Diapers.com), 솝닷컴(Soap.com), 뷰티바닷컴(BeautyBar.com) 등을 줄줄이 개설했다. 배송 상자에 손글씨로 적은 메모를 넣었고, 쉬는 날을 없애 고객이 언제든 반품할 수 있게 했다. 대도시 젊은 부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2010년 매출은 연간 3억달러를 넘어섰다.
그는 대도시 근처에 창고를 마련해 배송비를 낮췄다. 창고에는 로봇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키바에서 창고정리용 로봇을 도입해 인건비를 줄였다. 성공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아마존의 베저스가 인수 제안을 해온 게 시발이었다. 로어가 제안을 거절하자 아마존은 즉각 기저귀 등을 다이아퍼스닷컴보다 훨씬 싼 값에 팔기 시작했다. 2010년엔 ‘아마존맘’이란 서비스를 내놓고 기저귀 등을 정기 배달받으면 대폭 할인해줬다.
로어는 눈물을 머금고 2010년 퀴드시를 아마존에 5억4500만달러에 넘겨야 했다. 퀴드시를 인수한 아마존은 바로 아마존맘 서비스를 중단했다. 올초 다이아퍼스닷컴도 아예 중단했다. 사실상 ‘눈엣가시’ 같던 퀴드시를 없애기 위한 인수였다는 얘기다.
로어는 매각 조건에 따라 아마존 임원으로 2년 반 일했다. 의무기간을 채우자마자 아마존을 뛰쳐나와 2015년 제트닷컴을 차렸다. 처음부터 아마존을 겨냥했다. ‘아마존보다 저렴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연회비 99달러)의 절반 수준인 연회비 49.99달러를 낸 회원에게 아마존보다 10~15% 싼 가격으로 상품을 팔았다.
로어는 고객이 고른 여러 업체 상품을 하나의 박스에 모아 배송하는 식으로 비용을 아꼈다. ‘스마트 카트’ 기능을 도입해 고객이 같은 공급자에게서 많은 상품을 구입하면 추가 할인도 해줬다. 신용카드 대신 직불카드로 결제하면 1.5% 추가 할인해주고, 천천히 받거나 반품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면 값을 더 내려줬다. 매달 회원 수가 급증해 창립 첫해 10억달러 매출을 달성했다. 로어는 ‘아마존 킬러’란 별명을 얻었다.
이런 로어에게 지난해 맥밀런 월마트 CEO가 손을 내밀었다. 아마존에 밀리던 월마트가 전자상거래 전문성뿐 아니라 아마존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로어를 영입했다. 둘은 ‘베저스 타도’라는 같은 목적을 공유했다.
로어는 이 거래로 4억5000만~7억5000만달러를 거머쥐었다. 월마트 전자상거래 사업 대표를 5년간 보장받았다. 5년을 다 채우면 월마트 주식 355만 주도 받기로 했다. 현재 시가로 3억5000만달러가 넘는 규모다.
아마존식으로 아마존 잡기
로어는 즉시 월마트의 전자상거래 수술에 돌입했다. 월마트는 올초 ‘이틀 내 무료 배송’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와의 대결이었다. 35달러 이상을 구매하면 이틀 내에 무료로 배송해준다. 아마존은 연회비 99달러를 받지만 월마트는 회비가 없다. 로어는 올초 CNBC 방송에서 “이틀 내 배송서비스에 99달러나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월마트는 더 싸게 팔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도 공격적으로 내렸다. 4L짜리 액상 세탁세제가 아마존에선 20달러대지만, 월마트닷컴에선 8.97달러에 판다. 이런 제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마존이 온라인 강자라지만 전체 매출은 월마트가 세 배가량 많다. 구매력에서 앞서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판매 상품 수도 세 배 수준인 7000만 개로 확대했고, 반품도 월마트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30초 만에 할 수 있게 했다.
효과가 나타났다. 온라인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올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63% 성장한 온라인 판매는 2분기 60%, 3분기 54% 등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혁신적 기법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아마존과 인공지능(AI) 음성인식 스피커, 클라우드 서비스 등 분야에서 경쟁하는 구글과 제휴해 쇼핑 서비스인 ‘구글 익스프레스’에서 상품을 팔고 있다. 구글의 AI 스피커인 구글홈을 통해 음성 쇼핑 서비스도 시작했다.
100만 명의 월마트 직원이 퇴근길에 배송해주는 방법도 실험 중이다. 미국 인구 90%가 월마트 반경 16㎞ 내에 산다는 장점을 활용한 것이다. 가장 큰 강점인 신선 식료품도 온라인으로 판다. 고객들은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한 뒤 미국 내 1100개가 넘는 월마트 매장에서 당일 찾아갈 수 있다. 식료품을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인 우버의 택시로 배송하는 방법도 실험하고 있다.
월마트닷컴은 내년부터 제트닷컴 성공을 이끈 ‘스마트 카트’까지 도입한다. 월마트의 저가 이미지를 벗기 위해 고급 상품 제품군 확대에도 나섰다. 스피커 보스, 부엌용품 키친에이드 등을 유치해 별도 페이지에서 팔고 있다. 지난주엔 최고급 의류 브랜드 로드앤드테일러 제품을 온라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판매하기로 계약했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데이터리테일의 닐 사우더스 애널리스트는 “월마트는 미국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견조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지지부진하던 월마트의 온라인 판매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로어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월마트는 작년 8월 창립 1년도 안 된 전자상거래 회사 제트닷컴을 33억달러에 사들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월마트의 인수합병(M&A) 사상 최고가였다. 목적은 제트닷컴이 아니었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제트닷컴의 가능성이 아니라 로어의 전문성과 창업가 정신을 월마트에 들여오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로어도 악연이 있는 ‘베저스 타도’를 위해 맥밀런과 의기투합했다.
아마존 덤핑에 ‘눈물의 매각’
로어는 2005년 친구와 퀴드시(Quidsi)라는 전자상거래 회사를 세운 뒤 온라인 쇼핑몰인 다이아퍼스닷컴(Diapers.com), 솝닷컴(Soap.com), 뷰티바닷컴(BeautyBar.com) 등을 줄줄이 개설했다. 배송 상자에 손글씨로 적은 메모를 넣었고, 쉬는 날을 없애 고객이 언제든 반품할 수 있게 했다. 대도시 젊은 부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2010년 매출은 연간 3억달러를 넘어섰다.
그는 대도시 근처에 창고를 마련해 배송비를 낮췄다. 창고에는 로봇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키바에서 창고정리용 로봇을 도입해 인건비를 줄였다. 성공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아마존의 베저스가 인수 제안을 해온 게 시발이었다. 로어가 제안을 거절하자 아마존은 즉각 기저귀 등을 다이아퍼스닷컴보다 훨씬 싼 값에 팔기 시작했다. 2010년엔 ‘아마존맘’이란 서비스를 내놓고 기저귀 등을 정기 배달받으면 대폭 할인해줬다.
로어는 눈물을 머금고 2010년 퀴드시를 아마존에 5억4500만달러에 넘겨야 했다. 퀴드시를 인수한 아마존은 바로 아마존맘 서비스를 중단했다. 올초 다이아퍼스닷컴도 아예 중단했다. 사실상 ‘눈엣가시’ 같던 퀴드시를 없애기 위한 인수였다는 얘기다.
로어는 매각 조건에 따라 아마존 임원으로 2년 반 일했다. 의무기간을 채우자마자 아마존을 뛰쳐나와 2015년 제트닷컴을 차렸다. 처음부터 아마존을 겨냥했다. ‘아마존보다 저렴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연회비 99달러)의 절반 수준인 연회비 49.99달러를 낸 회원에게 아마존보다 10~15% 싼 가격으로 상품을 팔았다.
로어는 고객이 고른 여러 업체 상품을 하나의 박스에 모아 배송하는 식으로 비용을 아꼈다. ‘스마트 카트’ 기능을 도입해 고객이 같은 공급자에게서 많은 상품을 구입하면 추가 할인도 해줬다. 신용카드 대신 직불카드로 결제하면 1.5% 추가 할인해주고, 천천히 받거나 반품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면 값을 더 내려줬다. 매달 회원 수가 급증해 창립 첫해 10억달러 매출을 달성했다. 로어는 ‘아마존 킬러’란 별명을 얻었다.
이런 로어에게 지난해 맥밀런 월마트 CEO가 손을 내밀었다. 아마존에 밀리던 월마트가 전자상거래 전문성뿐 아니라 아마존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로어를 영입했다. 둘은 ‘베저스 타도’라는 같은 목적을 공유했다.
로어는 이 거래로 4억5000만~7억5000만달러를 거머쥐었다. 월마트 전자상거래 사업 대표를 5년간 보장받았다. 5년을 다 채우면 월마트 주식 355만 주도 받기로 했다. 현재 시가로 3억5000만달러가 넘는 규모다.
아마존식으로 아마존 잡기
로어는 즉시 월마트의 전자상거래 수술에 돌입했다. 월마트는 올초 ‘이틀 내 무료 배송’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와의 대결이었다. 35달러 이상을 구매하면 이틀 내에 무료로 배송해준다. 아마존은 연회비 99달러를 받지만 월마트는 회비가 없다. 로어는 올초 CNBC 방송에서 “이틀 내 배송서비스에 99달러나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월마트는 더 싸게 팔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도 공격적으로 내렸다. 4L짜리 액상 세탁세제가 아마존에선 20달러대지만, 월마트닷컴에선 8.97달러에 판다. 이런 제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마존이 온라인 강자라지만 전체 매출은 월마트가 세 배가량 많다. 구매력에서 앞서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판매 상품 수도 세 배 수준인 7000만 개로 확대했고, 반품도 월마트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30초 만에 할 수 있게 했다.
효과가 나타났다. 온라인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올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63% 성장한 온라인 판매는 2분기 60%, 3분기 54% 등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혁신적 기법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아마존과 인공지능(AI) 음성인식 스피커, 클라우드 서비스 등 분야에서 경쟁하는 구글과 제휴해 쇼핑 서비스인 ‘구글 익스프레스’에서 상품을 팔고 있다. 구글의 AI 스피커인 구글홈을 통해 음성 쇼핑 서비스도 시작했다.
100만 명의 월마트 직원이 퇴근길에 배송해주는 방법도 실험 중이다. 미국 인구 90%가 월마트 반경 16㎞ 내에 산다는 장점을 활용한 것이다. 가장 큰 강점인 신선 식료품도 온라인으로 판다. 고객들은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한 뒤 미국 내 1100개가 넘는 월마트 매장에서 당일 찾아갈 수 있다. 식료품을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인 우버의 택시로 배송하는 방법도 실험하고 있다.
월마트닷컴은 내년부터 제트닷컴 성공을 이끈 ‘스마트 카트’까지 도입한다. 월마트의 저가 이미지를 벗기 위해 고급 상품 제품군 확대에도 나섰다. 스피커 보스, 부엌용품 키친에이드 등을 유치해 별도 페이지에서 팔고 있다. 지난주엔 최고급 의류 브랜드 로드앤드테일러 제품을 온라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판매하기로 계약했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데이터리테일의 닐 사우더스 애널리스트는 “월마트는 미국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견조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