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이 신용카드사와 밴(VAN·부가가치통신망)사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카드가맹점 수수료를 낮추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카드사들이 밴사에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KB국민카드는 이달 초 한국신용카드밴협회 소속 12개 밴사에 ‘밴수수료 정률제 전환을 위한 계약’ 조건을 바꿀 것을 요청했다.

2015년 체결된 이 계약은 KB국민카드가 밴사에 주는 수수료를 결제 건당 일정 금액을 받는 ‘정액제’에서 결제 금액의 일정 비율을 받는 ‘정률제’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밴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정률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KB국민카드는 내년 말까지 밴수수료율을 낮춰주기로 했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KB국민카드는 밴수수료율 인하를 올해 말까지만 유지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KB국민카드가 이 같은 요청을 한 건 정부의 영세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2012년 1.8%였던 영세가맹점 수수료율은 지난해 1월 0.8%로 1%포인트 떨어졌다. 같은 기간 3.6%였던 중소가맹점 수수료율도 1.3%로 2.3%포인트 낮아졌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지난 8월 영세가맹점 분류 기준을 기존 연매출 2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중소가맹점은 연매출 3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조정하면서 카드사 수익은 급감했다. 올해 3분기(7~9월) KB국민카드의 수수료 수익은 2분기(367억1200만원)보다 22.1% 줄어든 286억800만원에 그쳤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에 따른 수익 감소를 메우기 위해 밴수수료율 인하 등 비용 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밴 업계는 KB국민카드의 계약 변경 요청을 거부할 태세다. 밴 업계 관계자는 “계약 상대방인 밴사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계약을 변경할 수 없다”며 “정률제 전환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카드사의 무리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갑(정부)이 을(카드사)을 옥죄니 병(밴 업체)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며 “수익성이 악화되면 밴사들도 생존을 위해 영세 밴 대리점에 주는 수수료를 낮출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