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란제리 브랜드인 미국의 ‘빅토리아 시크릿’이 지난 20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한 패션쇼가 많은 뒷얘기를 낳고 있습니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지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중국 현지에선 이번 패션쇼 무대에 선 중국인 모델 시멍야오(奚夢瑤)가 단연 화제입니다.

시멍야오는 홈그라운드인 상하이에서 열린 이날 패션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관심에 부담을 느낀 탓이었을까요. 워킹을 하던 중 자신이 입은 의상을 밟아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무릎을 찧고 만 그는 잠시 당황했지만 동료 모델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나 런웨이를 걸었지요.

시멍야오는 빅토리아 시크릿 사상 네 번째 아시아 모델입니다. 중국판 ‘우리 결혼했어요’ 프로그램에서 인기그룹 슈퍼주니어 최시원의 커플이었던 류웬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모델로 꼽힙니다. 1989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둥화대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시멍야오는 쇼가 끝난 뒤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 모든 분의 관심에 감사드린다. 모델 활동 7년 동안 무수히 넘어졌지만 아픈 건 상관없이 반드시 일어나 워킹을 마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앞으로의 가야 할 길이 길다. 계속 걸어나가겠다. 감사하다”고 올렸습니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은 “멍야오는 여전히 귀엽다. 계속 전진하라”며 응원의 댓글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패션쇼가 이런 훈훈한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블룸버그통신은 “빅토리아 시크릿이 정작 중국에서 만난 것은 관객이 아닌 보안이었다”며 패션쇼에까지 가해진 중국 정부의 통제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우선 중국 정부는 검토를 끝낼 때까지 빅토리아 시크릿 측에 이번 패션쇼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패션쇼에 참석한 유명인사와 패션 관계자, 언론인, 블로거 등은 입구에서 비자 검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간판 모델인 지지 하디드는 자신의 SNS에 게재한 인종차별성 사진 때문에 중국 당국으로부터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지요. 하디드는 올초 한 일식당에서 부처 모양 쿠키를 들고 표정을 따라 하며 눈을 찢는 흉내를 냈는데요. ‘눈을 찢는 행동’은 서구권에서 아시아인들을 조롱할 때 주로 하는 행위로 여겨집니다. 이후 상하이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그가 참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인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중국에 와서는 안된다며 강력하게 그의 입국을 반대했습니다. 하다드뿐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델도 뚜렷한 이유 없이 입국을 거부당했습니다.

유명 가수 케이티 페리는 패션쇼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대만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반중 시위의 상징으로 불리는 해바라기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비자가 거부됐습니다. 중국 보안당국은 방송국 관계자들이 이번 패션쇼가 열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외부를 촬영하는 것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막았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선 이전에도 저스틴 비버와 롤링스톤스의 공연이 열렸는데요. 그 땐 아무런 제약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만 유독 막은 것은 지나친 통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2기 출범 이후 모든 분야에서 통제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입니다.

이 밖에 이번 패션쇼에선 입장권이 판매되지 않아 주최 측이 보낸 초청장으로 입장이 가능했는데요. 이 초청장이 온라인에서 최대 3만5000달러(약 3800만원)에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고 밝혔는데요. 영국의 시장조사기관 민텔에 따르면 2015년 중국에서 여성 속옷 시장은 1120억위안(약 18조6000억원)에 달했고 2020년에는 지금보다 3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최근 매출 부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빅토리아 시크릿으로선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지요. 이런저런 논란 속에 개최된 이번 상하이 패션쇼가 빅토리아 시크릿에 성과를 안겨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