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여성들이 일하는 모습.  /알마 제공
1955년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여성들이 일하는 모습. /알마 제공
미국 영화 ‘히든 피겨스’는 지난 3월 국내 극장가에 나와 45만 명의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한 흑인 여성 세 명의 이야기다. 이들은 NASA 머큐리 계획(미국 최초의 유인 위성 발사 계획)의 공신이었지만 백인 남성이 주도하던 시대에 가려 많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

[책마을] 그녀들이 없었다면 '달 착륙'도 없었다
‘히든 피겨스’에 마음이 뜨거웠던 관객이라면 미국 과학자 나탈리아 홀트가 쓴 《로켓 걸스》에도 흥미를 느낄 법하다. 1940~1950년대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 입사해 ‘인간 컴퓨터’ 역할을 하며 우주탐사의 역사를 썼지만 여태껏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엔지니어들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2011년부터 5년간 이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그 자취를 복원했다.

JPL은 1940년대 초 로켓의 속도를 계산하고 궤적을 작성할 인력을 모집했다. 수학과 화학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이 많이 몰렸다. JPL의 컴퓨팅 부서가 100% 여성으로 꾸려졌다. 당시 관리자였던 여성 메이시 로버츠의 영향이다. 당시는 기계 컴퓨터 시대가 오기 전이다. ‘프라이든 계산기’라는 기계가 있었지만 사칙연산밖에 하지 못했다. ‘인간 컴퓨터’가 복잡한 계산을 하고 그래프를 그렸다. JPL이 태평양 위로 중폭탄을 날리고,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행성을 탐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계산을 이 여성들이 책임졌다.

무기는 오직 연필과 종이, 수학 실력이었다. 로켓 엔진 발사에 걸리는 시간은 단 몇 초뿐이지만 한 번의 실험을 분석하는 데는 1주일 이상이 걸렸다. 하루 8~9시간씩 연필을 쥔 손에 굳은살이 배겼다. 실험이 한 차례 끝날 때마다 ‘인간 컴퓨터’들의 책상에 노트 6~8권이 쌓였다. IBM 기계 컴퓨터가 도입된 1960년대 이후 이들은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고치고 구동하는 프로그래머가 됐다. 1970년대엔 연구소 프로그래밍의 90%를 여성이 책임졌다.

엔지니어들은 이들을 ‘여자 계산원’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그 호칭을 싫어했다. 자신들을 ‘여성단체’로 불렀고 능력만으로 ‘계산원’ 신분을 뛰어넘었다. 동시에 집에서는 양육 때문에 고민하고 상점에서 치마 아닌 바지 정장을 살 때 용기를 내야 했다. 책에는 항공우주 개발 역사와 함께 흘러온 여성들 삶의 면면이 담겨 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