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두 다리로 1450㎞…남극은 그렇게 정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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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2041
로버트 스원·길 리빌 지음 / 안진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520쪽 / 2만5000원
로버트 스원·길 리빌 지음 / 안진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520쪽 / 2만5000원
‘1월11일 토요일 지평선 위로 어떤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뭉툭한 구조물이 남극고원의 끝도 없는 평평함 위에 덩그러니 솟아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자 지평선 위로 밝게 빛나는 돔의 형태가 시야에 들어왔다. 미국의 아문센-스콧 기지였다. 우리가 남극점에 도달한 시각은 11일 11시53분이었다.’
세계적인 탐험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로버트 스원(61)이 1986년 1월 사상 최초로 걸어서 남극점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극탐험가 로버트 스콧과 어니스트 섀클턴, 로알드 아문센을 마음속의 ‘영웅’으로 기렸던 스원은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1984년 가을 남극탐험에 나섰다.
《남극 2041》은 스원이 남극 탐험의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 과정, 극점으로 향하는 가운데 겪은 대원들과의 협력과 갈등, 고난의 얘기다. 스원에게 꿈을 심어준 탐험 영웅들의 얘기와 1989년 스원이 새로운 일행과 함께 시작했던 북극점 탐험기도 실려 있다.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극지의 환경이 얼마나 장엄하고도 혹독한지 그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겐 선박이 필요했다.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바다를 의연히 헤쳐갈 수 있는 대형 선박이 필요했다. 남미 대륙과 남극 사이의 위도를 흔히 ‘포효하는 40대’ ‘분노의 50대’ ‘악 소리 나는 60대’라고 부른다. 가장 험난한 지역인 위도 70도대는 그곳까지 도달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별명조차 없었다.’
스원에 따르면 남극은 ‘극도로 포악한, 길들여지지 않은’ 대양이 사방을 포위한 고립무원의 대륙이다. 스원의 탐험대는 여기서 겨울을 난 다음 남극점으로 가야 했다. 1985년 남극의 여름, 스원 일행은 남극대륙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로스 빙붕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 면적이 대략 프랑스만했고, 얼음판의 두께는 300m를 넘었다.
극점까지 걸어가야 할 거리는 약 1450㎞. 썰매, 장비, 식량, 연료 등 각자 끌고 갈 무게는 160㎏에 달했다. 혹독한 추위는 말할 것도 없고, 크고 작은 굴곡과 곳곳의 크레바스가 행군을 방해했다. 무전기도, 후방 지원도 없는 혹독한 행군이었다. 허리에 로프로 연결한 짐 썰매를 끌면서 하루 9시간씩 행군한 결과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했다.
남극에서 돌아온 스원은 영웅이 됐다. TV에도 출연하며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막대한 탐험 비용은 부채로 남았고 그는 절망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북극점 탐험이었다. 1989년 3월 탐험대 ‘아이스워크’와 함께 북극점을 향해 출발한 스원은 그해 5월14일 끝내 북극점을 밟았다. 그는 인류 최초로 남극점과 북극점을 걸어서 밟은 사람이다.
책은 그의 이런 탐험기와 함께 그가 극지탐험을 통해 깨달은 것을 전해준다. 지구온난화를 이대로 방치하면 극지 환경을 지킬 수 없고, 대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책의 제목이 ‘남극 2041’인 것은 남극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1991년 남극조약 조인국들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모여 도출한 마드리드의정서가 2041년까지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남극에서의 국가 간 영역다툼은 ‘탐험의 영웅’ 시대가 끝나자마자 시작됐고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영국 뉴질랜드 호주 아르헨티나 노르웨이 칠레 프랑스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러시아는 기지를 세우며 경쟁했다. 하지만 이 의정서는 남극은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니며, 평화로운 과학적 연구 외에 군사적, 상업적 목적의 탐사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의정서 발효 50년 후엔 한 나라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새로 논의해야 한다는 것. 이 때문에 2041년에 남극은 새로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스원은 경고한다. 그는 그런 위험을 부르는 탐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상상한 미래 세계는 짹짹거리며 입을 벌리는 아기 새들로 붐비는 새 둥지 같았다. 제발 석유 좀 주세요. 보크사이트 좀 주세요, 백금 좀 더 주세요. 구리좀 주세요….”
그래서 스원은 2041년을 남극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는 해로 인식하고 지금부터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극지는 우리 행성의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성한다. 남극의 환경을 들여다보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과 같다. 지금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이 앞으로 나머지 지구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세계적인 탐험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로버트 스원(61)이 1986년 1월 사상 최초로 걸어서 남극점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극탐험가 로버트 스콧과 어니스트 섀클턴, 로알드 아문센을 마음속의 ‘영웅’으로 기렸던 스원은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1984년 가을 남극탐험에 나섰다.
《남극 2041》은 스원이 남극 탐험의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 과정, 극점으로 향하는 가운데 겪은 대원들과의 협력과 갈등, 고난의 얘기다. 스원에게 꿈을 심어준 탐험 영웅들의 얘기와 1989년 스원이 새로운 일행과 함께 시작했던 북극점 탐험기도 실려 있다.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극지의 환경이 얼마나 장엄하고도 혹독한지 그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겐 선박이 필요했다.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바다를 의연히 헤쳐갈 수 있는 대형 선박이 필요했다. 남미 대륙과 남극 사이의 위도를 흔히 ‘포효하는 40대’ ‘분노의 50대’ ‘악 소리 나는 60대’라고 부른다. 가장 험난한 지역인 위도 70도대는 그곳까지 도달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별명조차 없었다.’
스원에 따르면 남극은 ‘극도로 포악한, 길들여지지 않은’ 대양이 사방을 포위한 고립무원의 대륙이다. 스원의 탐험대는 여기서 겨울을 난 다음 남극점으로 가야 했다. 1985년 남극의 여름, 스원 일행은 남극대륙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로스 빙붕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 면적이 대략 프랑스만했고, 얼음판의 두께는 300m를 넘었다.
극점까지 걸어가야 할 거리는 약 1450㎞. 썰매, 장비, 식량, 연료 등 각자 끌고 갈 무게는 160㎏에 달했다. 혹독한 추위는 말할 것도 없고, 크고 작은 굴곡과 곳곳의 크레바스가 행군을 방해했다. 무전기도, 후방 지원도 없는 혹독한 행군이었다. 허리에 로프로 연결한 짐 썰매를 끌면서 하루 9시간씩 행군한 결과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했다.
남극에서 돌아온 스원은 영웅이 됐다. TV에도 출연하며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막대한 탐험 비용은 부채로 남았고 그는 절망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북극점 탐험이었다. 1989년 3월 탐험대 ‘아이스워크’와 함께 북극점을 향해 출발한 스원은 그해 5월14일 끝내 북극점을 밟았다. 그는 인류 최초로 남극점과 북극점을 걸어서 밟은 사람이다.
책은 그의 이런 탐험기와 함께 그가 극지탐험을 통해 깨달은 것을 전해준다. 지구온난화를 이대로 방치하면 극지 환경을 지킬 수 없고, 대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책의 제목이 ‘남극 2041’인 것은 남극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1991년 남극조약 조인국들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모여 도출한 마드리드의정서가 2041년까지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남극에서의 국가 간 영역다툼은 ‘탐험의 영웅’ 시대가 끝나자마자 시작됐고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영국 뉴질랜드 호주 아르헨티나 노르웨이 칠레 프랑스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러시아는 기지를 세우며 경쟁했다. 하지만 이 의정서는 남극은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니며, 평화로운 과학적 연구 외에 군사적, 상업적 목적의 탐사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의정서 발효 50년 후엔 한 나라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새로 논의해야 한다는 것. 이 때문에 2041년에 남극은 새로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스원은 경고한다. 그는 그런 위험을 부르는 탐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상상한 미래 세계는 짹짹거리며 입을 벌리는 아기 새들로 붐비는 새 둥지 같았다. 제발 석유 좀 주세요. 보크사이트 좀 주세요, 백금 좀 더 주세요. 구리좀 주세요….”
그래서 스원은 2041년을 남극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는 해로 인식하고 지금부터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극지는 우리 행성의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성한다. 남극의 환경을 들여다보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과 같다. 지금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이 앞으로 나머지 지구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