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한인 2019년 3월을 앞두고 런던에 있는 외국 금융회사의 엑소더스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들 금융회사는 영국 내 자산을 줄이고 은행 본부를 유럽 대륙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 미국 월가 은행들은 영국 정부의 확실하지 않은 브렉시트 일정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으며,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은 이들 은행을 유치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한 영국의 그늘이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금융허브 런던의 몰락?'… EU은행, 영국내 자산 3500억유로 축소
◆EU 은행 1년간 英관련 자산 17% 줄여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전날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 은행들이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결정 이후 1년간 영국 관련 자산을 1조9400억유로에서 1조5900억유로로 약 17% 줄였다고 전했다. FT는 EU 은행들이 영국 관련 자산을 줄인 것은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은행들은 같은 기간 영국 관련 부채도 1조6700억유로에서 1조3400억유로로 축소했다.

브렉시트와 관련한 영국 정부의 모호한 태도에 글로벌 금융회사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월가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이후 일정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고, EU와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불투명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은행들은 인력은 물론 자본과 인프라를 유럽 대륙으로 시급히 옮겨야 한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들 은행은 단기적으로 최대 1만 명의 인력을 이동시키는 비상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프랑스·독일 “웰컴 투 유럽” 유치전

영국에서 유럽 대륙으로 옮기려는 금융회사를 잡기 위한 각국의 유치전도 치열하다. EU 산하기구인 유럽 은행감독청(EBA)은 프랑스 파리로 이전을 결정했다. 직원이 100명 정도인 EBA는 규모는 작지만 유럽 은행에 대한 각종 규제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이다. 프랑스를 비롯해 독일 룩셈부르크 등 8개국이 유치전에 참가했지만 프랑스가 승리했다. 앤 피달고 파리시장은 “EBA의 제안을 적극 수용했다”고 했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유럽에서 가장 세율이 높은 소득세법을 폐기하고 자녀를 위해 각종 국제학교도 신설하겠다고 제안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 중인 노동개혁 등 각종 개혁이 EBA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최근 노동법과 관련한 혁신이 프랑스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BA 유치전에서 고배를 마신 독일 정부는 해고를 어렵게 하는 독일 노동법에서 금융회사를 제외하는 법률 개정을 약속하며 글로벌 금융회사 유치에 나서고 있다. 네덜란드는 공항 접근성이나 디지털화, 우수한 노동력 등을 강점으로 꼽으며 글로벌 금융회사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금융회사가 가장 선호하는 곳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중앙은행(ECB)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스탠다드차타드, 골드만삭스가 프랑크푸르트로 거처를 옮겼거나 계획 중이다. 미즈호·미쓰비시은행 등 일본 은행은 물론 우리은행 등 한국 금융회사도 프랑크푸르트에 자리를 잡았다. 프랑크푸르트 이외 도시를 선택하는 금융회사도 있다. 영국 보험사 로이즈는 벨기에 브뤼셀을 선택했고, JP모간, AIG, 히스콕스는 룩셈부르크를 선호한다. HSBC는 파리를 선택했다.

◆英 금융산업 경쟁력 상실할까 불안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런던 탈출이 가시화하면서 영국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영국 경제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이 영국의 총부가가치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2015년 기준)은 7.2%다. 수출까지 포함하면 11.8%에 달한다. 고용에서도 금융산업은 110만 명을 고용해 영국 총고용의 7%를 차지한다.

영국의 금융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단행한 규제 완화 덕분이었다. 대처 총리는 1986년 금융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개혁안을 선택했다. 최저 중개수수료를 폐지하고 외국 금융회사의 영국 시장 진출을 자유롭게 허용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대형 금융그룹도 탄생했다. 이 덕분에 영국은 지난 30년간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했다. 영국은 그러나 브렉시트로 EU의 ‘금융 패스포트(한 곳에서 은행을 설립하면 EU 내 어디서든 지점을 설립할 수 있는 권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패스포트를 얻지 못하면 어떤 금융회사도 영국에 사무소를 설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 14~15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선 브렉시트 문제를 주로 다룰 예정이다. 브렉시트 협상에서 충분한 진전이 있었는지를 평가한 뒤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의 관계에 관한 협상을 병행하는 2단계 협상 진입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회의 이전까지 브렉시트와 관련해 영국과 EU가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 주목된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