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 16일 지역 언론에 공개한 사우스캐롤라이나 가전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지난 16일 지역 언론에 공개한 사우스캐롤라이나 가전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제공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미국 내 두 번째로 큰 해외직접투자국이 됐다. 최근 한국 기업의 주요 투자는 롯데케미칼의 루이지애나주(州) 석유화학시설 건설(31억달러), 한국타이어의 테네시주 클락스빌 신공장 건설(8억달러), SK의 텍사스주 에틸렌아크릴산 생산(3억7000만달러) 등을 포함한다.”

지난 8일 한·미 양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 공동 언론발표문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은 호황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추진 등 기업을 경영할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

반면 한국 내 시장은 좁고 정부 정책은 반(反)기업적이다.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풀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한번 호되게 당한 기업들은 다시 큰돈을 중국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 기업의 미국 법인장은 “한국은 기업을 내치려 하고 미국은 끌어들이려 하니 많은 기업이 미국에서 성장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기업환경 나빠지는데…미국은 '규제 완화+낮은 세금'으로 유혹
◆한국 대외투자, 400억달러 넘나

지난 5년간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반기 기준으로 평균 20억~30억달러 수준(수출입은행 통계)이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살아나던 2015년 하반기 30억달러 후반으로 늘더니 지난해 상반기 50억달러, 하반기 78억달러에 달했다. 올 상반기엔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의 전체 해외투자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올 상반기 47%까지 높아졌다. 이 비중은 통상 20%대였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는 352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대미 투자 증가에 힘입어 사상 최초로 400억달러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기업으로선 미국은 시장도 크고 정부가 규제 완화, 세율 인하 등 친기업 정책을 취하고 있어 사업 확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직접 수출이 통상 압박에 막혀 쉽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 투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우스캐롤라이나 가전공장 착공, 전장업체 하만 인수, 텍사스주 오스틴의 반도체 공장 확장 등에 나섰다. LG전자도 테네시 가전공장 착공, 뉴저지 신사옥 건설을 시작했다. SK이노베이션의 E&P사업부(탐사사업)는 올초 아예 휴스턴으로 옮겼으며 포스코는 지난 9월 인디애나주에 선재센터를 준공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달 테네시주 공장을 완공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내 세 번째 음식료공장을 뉴저지주에 짓고 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연구소 설립이 늘고 있어서다. 2014년 SK하이닉스(콜로라도주)와 두산인프라코어(노스다코타주), 2015년 현대모비스(미시간주), 2016년 CJ제일제당(캘리포니아주)과 코오롱(조지아주)이 미주 연구개발(R&D)센터를 지었고 최근 한국전력은 실리콘밸리 연구소 설립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헤드헌팅회사인 HR캡의 김성수 대표는 “연구소를 지어 현지 수요 등을 연구한 뒤 생산·판매법인을 설립하거나 확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장+친기업 정책+보호주의

한국 기업만 미국에 몰리는 게 아니다. 미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대미 외국인 직접투자는 4770억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4000억달러를 넘어섰다. 2016년에도 4680억달러를 유치했다.

미국이 세계 기업을 끌어들이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면서도 국내총생산(GDP)이 두 분기 연속 3%(연율 기준)대를 기록할 정도로 경기가 좋다. 미국의 경제분석기관인 콘퍼런스보드는 최근 내년 미국 성장률이 올해(2.3% 예상)보다 높은 2.6%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기업인 인코코의 박화영 회장은 “미국은 시장이 워낙 커서 경쟁이 덜한 측면이 있다”며 “마진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투명한 법·제도를 갖추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한국 내 반기업 정서 등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이 낮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투자를 빨아들이는 요소다. 글로벌 인재가 모여 있고 셰일혁명으로 에너지값도 크게 떨어졌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이 실리콘밸리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미국에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도 강하다. 삼성전자 등이 2011년부터 실리콘밸리 연구소 투자를 대거 늘린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역시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는 ‘국내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통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해외 기업인이라도 미국에 투자하면 백악관으로 불러 웃으며 악수를 한다.

◆법인세율 인하 시 투자 더 늘 듯

트럼프 정부는 이르면 내년 초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0%로 크게 인하할 계획이다. 세제개편안은 이미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에선 이번주 표결에 부쳐진다. 통과되면 한국(22%)보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낮아진다. 한국이 법인세율을 25%로 인상하면 5%포인트 격차가 생긴다. 이미 한국 10대 기업의 유효법인세율이 21.8%로 미국 10대 기업 평균(18.3%)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한국경제연구원이)도 있다.

여기에다 미국에선 각 지방자치단체가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 제2본사 유치에 뉴저지주가 70억달러 감면을 내걸었고, 폭스콘 공장 설립에 위스콘신주가 30억달러 혜택을 주는 것처럼 미국 지자체들은 세제 혜택뿐 아니라 전기세 인건비 등도 보조해준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