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박정희의 자조·자립과 '헬조선'
미국 하버드대의 에즈라 보걸 등 외국 학자들은 ‘조국 근대화’와 ‘할 수 있다 정신(can-do spirit)’을 박정희 대통령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할 수 있다 정신’은 당시 함께 근대화를 시도했던 개발도상국에서는 찾을 수 없는 박정희 고유의 언어다. 이후 ‘할 수 있다 정신’은 ‘잘살아 보세’ 구호와 함께 국민이 앞장서고 정부는 뒤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민간주도 개발로 자리 잡았다. 수출주도 산업화가 그랬고 새마을 운동이 그랬다. 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로 기업끼리 수출 경쟁을 하게 했고, 마을끼리 경쟁하며 농촌이 스스로 잘 살도록 했다. 정부가 정책으로 선도했지만 현장은 민간이 주도한 성장이었다.

민간과 개인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정신은 1964년에 벌써 나타난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함보른 탄광을 방문해 파독광부와 간호사들 앞에서 “남에게 의뢰하는 의타심을 버리고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자”며 그 유명한 ‘눈물의 연설’을 마무리했다. 당시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한국이 103달러, 필리핀은 129달러였다.

이 때문에 박정희 시대 ‘한강의 기적’은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자마자 남북한으로 갈라지고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에 휩싸여 폐허가 된 나라를 ‘부국’으로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독일 ‘라인강의 기적’보다 더욱 기적적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는 졌지만 이미 항공기와 탱크, 자동차를 만들 기술력과 마셜 플랜이라는 미국의 대규모 재정 지원이 있었다.

국민이 정부에 기대지도 정부가 나서지도 않는 자조·자립이 강조되던 시절, 가난하지만 국민은 꿈이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언론과 방송은 ‘부의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 그리고 ‘피폐해지고 절망에 허덕이고 있는 삶’이라는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바쁘다. 젊은 세대의 일부는 ‘헬조선’을 외치고 어떻게 하면 ‘조선을 떠날 수 있는가’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국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세금으로 책임지겠다고 약속하고, 정치는 부자 증세와 대기업 규제, 나누어 분배하기에 전력을 다하는 포퓰리즘으로 치닫고 있다. 장관 후보자들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 주택을 포기하는 책임은 모두 기성세대와 신자유주의의 횡포를 용인하는 헬조선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헬조선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정치인들이 “응! 엄마가 다 해 줄게!”라고 하며 유모국가(nanny state)를 자처한 데 기인한다. 국가가 젊은이들을 응석받이로 만들고, TV 드라마 대부분이 ‘신데렐라 신드롬’으로 노력 없이 신분 상승하는 허상(虛像)을 전 국민에게 심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 좌파정부가 국민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겠다며 유모를 자처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유모국가는 개인을 따라 다니며 끔찍이도 간섭하고 대신해 줬지만 결과는 모든 일을 세상과 정부만 탓하는 나약한 의존형 인간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은 ‘정부가 모두 해주겠다’와 이를 위한 ‘세금으로 선심’ 이야기로 넘쳐났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올해보다 7.1% 증가한’ 429조원의 내년도 예산을 공공 일자리, 청년 일자리, 소득 올려주기, 중소기업 지원하기에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며 노력했지만 10년 만에 최악의 10월 청년실업률이라는 결과로 보듯이 정부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전능하지 않다. 그리고 ‘작은 정부’는 틀렸고 ‘큰 정부’가 옳다고 했지만, 3조원의 세금을 들여 최저임금을 보전해주는 일까지 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정부 보전을 내년으로 끝낼 수 있을까? 정부가 민간 기업의 최저임금 인상분을 지급하는 관행이라는 사회주의화를 걱정하는 것이다.

국회는 지금 정부가 제출한 ‘선심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 부담으로 남는 공무원 증원, 정부 지원에 안주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복지예산 및 중소기업 지원 예산 등을 걷어내야 한다. 대신 벤처기업을 격려하고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국민을 돕는 용도로 쓰이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 도움 없이 할 수 있다는 자조·자립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헬조선이 될 것이다.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iykim@hally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