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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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A양은 요즘 혼란에 빠졌다. 가채점 결과 서울대 합격선 언저리에 걸쳐 있는 것 같아서다. “수학 한 문제 답안을 뭘로 썼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는 A양은 차라리 서울대 정시 입학을 포기하고, 연세대 논술전형에 응시할까 고민 중이다.

‘깜깜이’ 대입 제도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험생에게 수능 성적 정보를 100% 제공하고 수시와 정시 가운데 어느 쪽이 유리한지 판단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 ‘권리’를 박탈한 채 깜깜이 지원을 하도록 한다는 지적이다. 고3 진학담당교사들이 “정부가 대입 로또를 조장하는 꼴”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사설 컨설팅 업체 없이는 어떤 대학을 가야 할지조차 결정하기 어렵다는 게 일선 교육 현장의 하소연이다.
수능 점수 모르는데 대학 고르라고?… '대입 로또' 조장하는 정부
◆성적표도 없이 대학 고르라니…

현 대입 제도는 ‘선(先)수능, 후(後)수시’ 구조다. 일부 수시 전형이 9월부터 이뤄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수능이 끝난 직후 시작해 12월20일에 마무리된다. 수능 성적은 12월12일에야 나온다. 수험생과 학부모, 고교 교사 등이 문제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수능 점수를 보지도 못한 채 수시에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고교 교사는 이런 상황을 ‘수시 납치’라고 표현했다. 수능 고득점으로 정시에서 상위권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데도, 일단 수시에 합격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그 대학에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선 교사들이 수능 성적표 발부 이후로 수시 일정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선택권이 제한된 데다 막상 수능 성적표를 받아도 그 점수로 어떤 대학을 선택할지 역시 막막하다. 계산법이 워낙 복잡해 입시 컨설팅 업체의 배치표라도 없으면 진학 상담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경우의 수가 워낙 많아 어지간한 통계학 지식이 없으면 학부모나 교사 개인이 계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라고 했다.
지난 26일 유웨이중앙교육의 2018학년도 정시 가채점 설명회가 열린 서울 개포동 SH서울주택공사 대강당이 수험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차 있다. 참석자들이 정시모집 배치참고표를 보며 강사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유웨이중앙교육의 2018학년도 정시 가채점 설명회가 열린 서울 개포동 SH서울주택공사 대강당이 수험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차 있다. 참석자들이 정시모집 배치참고표를 보며 강사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요자 중심으로 대입제도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기준 점수가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 두 가지로 제시되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학별로 어떤 점수를 적용하는지가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을 고르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예전 학력고사 땐 하나의 기준 점수를 토대로 자신의 전국 석차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는데 현 시스템에선 이게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마다 과목별 가중치가 제각각인 것도 수험생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예컨대 한양대는 국어·수학·탐구 반영 비율이 각각 33.3%로 동일하지만 연세대는 40 대 40 대 20 비율로 반영하는 식이다. 국·수·탐 합계 점수가 같더라도 대학마다 우선시하는 과목을 잘 봤느냐 여부에 따라 당락이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임 대표는 “종로학원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총합점이 같은 학생 두 명의 석차가 3000등가량 벌어지는 일도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복잡한 수능 시스템은 2005학년도에 선택형 수능을 시행하면서 시작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수험생들이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끔 하는 바람에 원점수로 비교하기 어려워 표준점수, 백분위 같은 환산점수를 내놔야 했다. 대학별로 자신들이 원하는 유형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과목별 가중치를 두면서 계산법이 복잡해졌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수시와 정시 모두 ‘깜깜이’로 치러지는 대입 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시학생부종합전형만 해도 어떤 공부와 활동을 해야 합격할 수 있는지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반고의 한 진학담당 교사는 “복잡한 대입제도는 정보와 돈을 가진 이들에게 유리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박동휘/김봉구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