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오직 믿음'으로 밀어붙인다는 정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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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의 유럽 탐험가들
"지구는 둥글다" 입증했지만
천동설 고수한 '구중궁궐' 교황청
일자리 줄이는 역효과 외면하고
밀어붙이는 소득주도 성장론
비명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
"지구는 둥글다" 입증했지만
천동설 고수한 '구중궁궐' 교황청
일자리 줄이는 역효과 외면하고
밀어붙이는 소득주도 성장론
비명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남반구의 대양을 항해해 아프리카 최남단에 도착(1488년)하기 전까지, 적도 아래로 내려가 본 유럽인은 아무도 없었다. 적도 근처에 가면 바다가 뚝 떨어져 낭떠러지가 된다든지, 100도가 넘는 뜨거운 바닷물이 펄펄 끓는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아무도 원거리 원정을 생각하지 못했다. 디아스가 목숨을 건 탐험을 통해 미신을 깬 덕분에 본격적인 대(大)항해 시대가 열렸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1492년)한 콜럼버스, 처음으로 세계를 일주(1522년)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한 마젤란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박지향 지음, 근대로의 길)
성난 파도,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며 신세계를 개척해낸 탐험가들을 ‘미천한 것들’로 업신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중세 암흑기를 지배한 신정(神政)의 가톨릭 지도자들이었다. 자신들이 규정한 ‘진리(천동설)’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로마 교황청은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손수 제작한 망원경으로 지동설(地動說)을 확증(1610년)하자 대로(大怒)했다. 종교재판에 회부해 지동설 포기를 명령했다. 갈릴레이가 법정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독백(1633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마젤란이 온몸을 던져 입증한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의미한 것에 교황청이라는 구중궁궐에 앉은 자들은 그렇게 100년 넘도록 눈 감고 귀를 막고 있었다.
21세기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라는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고 있는 기업들이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지침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각종 임금 인상을 통해 근로자의 소득을 끌어올리면 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그것이 경제성장의 선(善)순환 고리로 연결된다는 게 소득주도 성장론의 요지다. 그 실천 방안으로 내놓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 처방에 기업들이 현실적 문제들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모두가 잘사는 경제’를 위한 격차 해소 조치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멋진 구호나 “그랬으면 좋겠다”는 설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구중궁궐에서는 결코 내다볼 수 없는 온갖 불가측 변수가 소용돌이치는 게 현실세계다. 생산성은 나아진 게 없는데 내년 최저임금을 16.4%나 끌어올리고, 고용유연성이 꽉 막힌 상태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고도 버텨낼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멀쩡한 직원을 내보내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잇따르고 있다. 취약계층 근로자들을 더 잘살게 해주겠다는 정부 처방이 오히려 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부조리극이 벌어지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이런 부작용과 혼란을 무릅쓰고 밀어붙여도 될 만큼의 궁극적인 효과를 검증받지 못했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개발연대 고도성장 이론을 제공했던 ‘서강학파’ 경제학자들은 며칠 전 세미나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해 “소설 같은 이론” “이론이 아니라 믿음에 가깝다”는 등의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국제노동기구(ILO) 연구 등 소득주도 성장론의 근거로 제시되는 주요 연구를 검증한 결과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는 요소들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 임금 수준이 노동생산성에 비해 높으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박정수 서강대 교수)
보수 학자들만이 아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조윤제 주미대사,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문재인 정부의 중량급 인사들도 노동생산성과 고용유연성을 높이는 조치를 외면한 성장전략에 경고 신호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정부도 ‘왜 다른 얘기들이 나오는지’ 살펴볼 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소집한 ‘대한민국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청와대 참모들과 각 부처 장·차관들에게 “무엇보다도 민간의 지혜와 현장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낡은 규제로 민간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는 ‘절대 신앙’에 잘못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부터 되돌아보는 일이 시급하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
성난 파도,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며 신세계를 개척해낸 탐험가들을 ‘미천한 것들’로 업신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중세 암흑기를 지배한 신정(神政)의 가톨릭 지도자들이었다. 자신들이 규정한 ‘진리(천동설)’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로마 교황청은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손수 제작한 망원경으로 지동설(地動說)을 확증(1610년)하자 대로(大怒)했다. 종교재판에 회부해 지동설 포기를 명령했다. 갈릴레이가 법정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독백(1633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마젤란이 온몸을 던져 입증한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의미한 것에 교황청이라는 구중궁궐에 앉은 자들은 그렇게 100년 넘도록 눈 감고 귀를 막고 있었다.
21세기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라는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고 있는 기업들이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지침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각종 임금 인상을 통해 근로자의 소득을 끌어올리면 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그것이 경제성장의 선(善)순환 고리로 연결된다는 게 소득주도 성장론의 요지다. 그 실천 방안으로 내놓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 처방에 기업들이 현실적 문제들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모두가 잘사는 경제’를 위한 격차 해소 조치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멋진 구호나 “그랬으면 좋겠다”는 설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구중궁궐에서는 결코 내다볼 수 없는 온갖 불가측 변수가 소용돌이치는 게 현실세계다. 생산성은 나아진 게 없는데 내년 최저임금을 16.4%나 끌어올리고, 고용유연성이 꽉 막힌 상태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고도 버텨낼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멀쩡한 직원을 내보내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잇따르고 있다. 취약계층 근로자들을 더 잘살게 해주겠다는 정부 처방이 오히려 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부조리극이 벌어지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이런 부작용과 혼란을 무릅쓰고 밀어붙여도 될 만큼의 궁극적인 효과를 검증받지 못했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개발연대 고도성장 이론을 제공했던 ‘서강학파’ 경제학자들은 며칠 전 세미나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해 “소설 같은 이론” “이론이 아니라 믿음에 가깝다”는 등의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국제노동기구(ILO) 연구 등 소득주도 성장론의 근거로 제시되는 주요 연구를 검증한 결과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는 요소들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 임금 수준이 노동생산성에 비해 높으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박정수 서강대 교수)
보수 학자들만이 아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조윤제 주미대사,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문재인 정부의 중량급 인사들도 노동생산성과 고용유연성을 높이는 조치를 외면한 성장전략에 경고 신호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정부도 ‘왜 다른 얘기들이 나오는지’ 살펴볼 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소집한 ‘대한민국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청와대 참모들과 각 부처 장·차관들에게 “무엇보다도 민간의 지혜와 현장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낡은 규제로 민간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는 ‘절대 신앙’에 잘못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부터 되돌아보는 일이 시급하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