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부산 경남 울산)·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민간 출신.’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인사들의 면면을 따져보면 이 같은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새로 바뀐 금융회사 및 금융협회장은 12명에 달한다. 수장 대부분이 한꺼번에 물갈이된 데 따라 금융계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새 CEO의 성향이나 역량은 향후 각 금융회사 및 금융협회는 물론이고 업계 전반 분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어서다.
문재인 정부 금융CEO 키워드는 'PK 출신·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민간'
◆PK 출신 약진 돋보여

이번에 금융계 CEO에 오른 12명 중 5명은 PK 인사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부산)을 비롯해 김지완 BNK금융그룹 회장(부산), 허인 국민은행장(경남 진주), 빈대인 부산은행장(경남 남해) 등이 PK 출신이다. 또 고향은 강원 평창이지만 대학 생활을 부산에서 보낸 이동빈 수협은행장(부산대 경영학과)도 PK 인사로 통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 인사가 대거 주목받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난 9월 김지완 회장 선임 직후엔 PK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임된 게 아니냐는 ‘낙하산 논란’이 거셌다. 김 회장은 경력 대부분이 증권과 관련돼 은행업과는 거리가 있는 데다 BNK금융과도 인연이 없어서다. 김 회장은 문 대통령 후보 시절 캠프에서 자문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일 취임한 이동빈 행장도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 멤버여서 선임된 게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 행장은 이날 취임 기자회견에서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선을 그었다.

◆꺼진 불도 다시 봤다

한 은행 임원은 “꺼진 불도 다시 본 게 이번 인사의 주요 특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인사와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올드보이들이 대거 귀환해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비롯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 김지완 회장 등은 대표적인 올드보이로 꼽힌다.

김용덕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관세청장과 건설교통부 차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자문조직에도 몸담았다. 김지완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경제정책자문단으로 활동했다. 이동걸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이번 대선에서 캠프 비상경제대책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선 올드보이 등용을 두고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가상화폐, 핀테크(금융기술) 등 금융산업 발전 속도가 빨라지는 와중에 올드보이들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다.

그나마도 당초 주요 수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올드보이가 더 발탁되지 않은 것은 세간의 우려가 감안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로 홍재형 전 부총리와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 등 관료 출신이 거론되다 돌연 민간 출신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이 취임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환경이 급변하는데 20년 전 금융계에 있던 분들이 세평에 오르내려 눈과 귀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그런 분들이 오실 우려가 있다면 그렇게 안 되도록 하겠다”며 올드보이가 주를 이루는 것은 막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민간·전문가 발탁 눈길

과거에 비해 ‘관료 출신’ 인사가 많지 않다는 점도 각종 여론이 감안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대 금융협회장 중 두 명(김태영 은행연합회장·신용길 생명보험협회장 내정자)이 민간 출신이다. 관료 출신이 많이 가던 금융협회장 자리에 민간 출신이 주를 이룬 게 이례적이란 분석이 많다. 지난달 29일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이 선임된 데 이어 30일에는 신용길 생보협회장이 내정됐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농협에서 금융제도팀 과장, 수신부장, 금융기획부장, 기획실장을 거쳐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까지 지냈다. 신용길 생보협회장 내정자도 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1992년 교보생명에 입사했으며 교보생명 자산운용본부장과 법인고객본부장, 사장 등을 지냈고 2015년 KB생명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은행 임원은 “민간 출신 협회장이 잇따라 선임되면서 ‘관치 금융’ 논란은 주춤해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아울러 BNK금융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중은행장이 각 은행 내부 출신이다. 허인 국민은행장과 손태승 우리은행장, 빈대인 부산은행장, 송종욱 광주은행장 등은 모두 각 은행에서 부행장까지 지냈다.

◆법대 출신 많아

출신 대학은 서울대 네 명, 부산대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각각이다. 특정 대학에 쏠리는 현상이 비교적 심하지 않다는 평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서금회(서강대 금융인 모임)’라인이 급부상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대신 문 대통령과 같은 법학을 전공한 경우가 많은 게 돋보인다. 김상택 SGI서울보증보험 사장은 경희대 법학과 출신으로, 문 대통령과 학교 및 전공이 같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서울대 법학과, 손태승 우리은행장 내정자는 성균관대 법학과, 빈대인 부산은행장은 경성대 법학과를 나왔다.

이 밖에 금융협회장은 모두 60대 중반, 은행장은 최고령인 김지완 회장(71), 이동걸 회장(64)을 제외하면 모두 50대 중후반이라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김태영 회장(64)과 신용길 회장 내정자(65), 김용덕 회장(67) 등 세 명의 평균 연령은 65.3세다. 이동걸 회장과 김지완 회장을 비롯 CEO가 새로 선임된 9개 은행 수장의 평균 연령은 58.8세로, 협회장 평균 연령보다 6.5세 적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초기에는 금융계 CEO로 PK 출신과 올드보이를 주목하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민간 전문가로 눈을 넓힌 것 같다”며 “결과적으로는 다양한 이력을 갖춘 CEO 군단이 생겼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말했다.

정지은/윤희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