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가 어제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2007년 출범 당시 6명에 불과하던 회원은 1666명으로 늘어났고, 누적 기부액도 1831억원에 달했다. 아너소사이어티가 국내 기부문화를 바꿔 놓으며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다.

회원 중에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등 기업인이 절반에 가까운 46%를 차지한다. 전문직 종사자, 자영업자, 스포츠 스타·연예인 등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다.10년 적금으로 모은 1억원을 내놓은 60대 경비원, 분식집을 하며 번 3억원을 기부한 할머니,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 이름으로 거액을 기탁한 아버지 등 우리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의 동참도 줄을 잇고 있다.

기부문화가 우리 사회 전 계층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국민의 기부활동은 아직도 미흡한 수준이다. 영국의 자선지원재단(CAF)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부경험과 자원봉사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집계해 산출한 기부지수는 조사대상 140개국 중 75위에 불과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상반기 국민 기부 참여율도 26.7%로, 2010년 이후 최저치였다. 기부 금액도 국내 총생산(GDP) 대비 0.8% 선에 그쳤다.

이영학 사건 등이 터지면서 기부금 관리 및 사용에 대한 불신이 커진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선의(善意)의 기부를 사실상 막고 있는 세법규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기부문화를 선도하고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기업인의 ‘통 큰 기부’가 관련법 미비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주식 90%를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가 ‘증여세 폭탄’ 때문에 집까지 압류 당했던 황필상 수원교차로 창업주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자선 목적의 주식 기부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거의 매기지 않는다. 오히려 소득공제 혜택까지 준다. 우리나라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총 지분의 5%를 넘는 주식을 증여하면 최대 60%까지 세금을 매긴다. 어제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공익법인 중 일부(대기업과 특수관계가 아닌 성실공익법인)의 경우만 증여세 비과세 한도를 10%에서 20%로 늘렸을 뿐, ‘5% 룰’(주식 5% 이내 기부만 비과세)은 그대로 뒀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이 ‘대기업 편법 상속’에 대한 우려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이다.

지금까지 약 40조원의 재산을 공익적 목적에 내놓은 빌 게이츠도 한국에서라면 기부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주와 같은 기부왕이 한국에서도 나와 기부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그러려면 관련 법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