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마야문명은 오늘날의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과테말라, 유카탄 반도 전역과 온두라스 일부에 퍼져 있는 중앙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을 말한다. 그 기원은 놀랍게도 기원전 2000~3000년께로 추정되며, 6~10세기에 이르기까지 중앙아메리카를 지배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오늘날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마야 유적의 대부분은 열대 밀림 속에 자리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유카탄 반도를 비롯한 열대 우림 지역에 터전을 잡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마야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집권 단일지도체제가 아니라 수많은 부족의 집합으로서 도시국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적들도 밀림 속
도처에 흩어져 있어 마야문명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마야문명의 속살로 가는 길은 마치 미로를 탐험하는 기분을 맛보게 한다.

멕시코의 치아파스주에 있는 ‘팔렝케’를 찾아가는 길은 먼 길이었다. 이 일대는 원주민으로 구성된 사파티스타 반군이 출현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경계가 삼엄하고 검문검색이 철저했다. 밀림 속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치아파스주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인 산크리스토발을 떠난 버스는 물결에 춤추듯 기우뚱거리면서 10여 시간을 달렸다.


피라미드 지하통로에 왕묘의 입구 있어
이 팔렝케 유적이 세계인을 놀라게 한 것은 이곳의 한 피라미드, 즉 지금의 ‘비명의 신전’이라고 이름 붙은 피라미드 지하통로에서 왕의 분묘가 발견되면서부터다. 높이 22m, 69단의 급한 계단을 올라가면 천장이 마야 아치로 된 신전이 있다. 이 신전 바닥에서 1949년 멕시코의 고고학자 알베르토 루스가 놀랍게도 아래로 내려가는 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희미한 조명 아래 지하통로는 제법 으스스했다. 밑으로 한없이 내려가는 계단은 가파를 뿐만 아니라 아차 하면 미끄러져 이 무덤 속에 그대로 묻혀야 할 판이기에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됐다. 도굴꾼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지하에서 다시 지하로 통로는 계속 이어졌다. 잔뜩 긴장한 가운데서도 이 지하통로야말로 마야시대로 빨려들어가는 어떤 신비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주선 내부와 닮은 문양이 화제
역시 통로의 막다른 곳에 묘실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묘실의 천장은 마야 아치로 돼 있고 벽에는 저승 왕이 묘사된 벽화가 있다고는 하나 희미해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곳의 석관 안에서 가면을 비롯해 온통 비취투성이인 ‘파칼 왕’의 미라가 발견됐다. 그 비취 가면과 미라는 지금은 모두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지만 세인들을 정작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석관의 뚜껑에 조각돼 있는 문양이었다. 5t이나 되는 석판에 인간, 신, 식물 및 마야 문자가 빈틈없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데, 그 문양의 전체 흐름이 우주선 내부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마야의 신관이 우주선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이 문양으로 인해서 ‘팔렝케의 우주인설’이 나왔고, 마야문명을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를 뒤덮고 있는 열대 숲의 바다에는 몇백 개의 마야 유적이 깔려 있는데 그 대부분이 이처럼 밀림 깊숙이 감춰져 있어 접근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중 일부분인 몇 개만이 정돈돼 관광객을 맞고 있는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우물가의 집’이라는 어원을 가진 ‘치첸이트사’와 ‘마법사의 피라미드’로 유명한 ‘욱스말’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그리고 스페인 탐험대가 최초로 봤다던 ‘툴룸 신전’과 ‘캄페체의 요새’도 짙푸른 카리브해를 바라다보는 언덕 위에 지금껏 초연하게 서서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기에 밤새 밀림 길을 구불텅거리며 달리고 달렸다.
여자와 어린이 산 제물로 바치기도
밀림 속의 광대한 부지에 흩어져 있는 치첸이트사의 유적군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해 피라미드 ‘카스티요’에 올랐다. 사방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가운데 ‘전사의 신전’ ‘천문관측탑’ ‘후에고 데펠로타’ 등 정글 속의 유적들이 신비스럽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어딘가로 작은 길이 이어지는데, 그것은 ‘세노테’라는 그 유명한 전설의 샘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실 이 치첸이트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전설의 샘 세노테일 것이다. ‘성스러운 샘’이라고 번역되는 이곳은 사방이 울창한 밀림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곳에 난데없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괴상한 곳이다. 석회암질의 이 구멍은 직경 66m, 깊이 20m 정도의 천연 샘인데, 당시 마야인들은 이곳에 비의 신이 살고 있다고 믿고 필요할 때마다 여자와 어린이들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이런 애한이 서려서인지, 현대인이 지금 봐도 어쩐지 음산하면서도 성스럽게만 느껴진다.

스페인군에 의해 문명의 종지부 찍어
마야 최후의 도시는 유카탄 반도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는 ‘티칼’이다. 지금의 과테말라에 속한 이곳은 마야 고전기 문명의 최대 도시로서 17세기 말엽까지 독립을 유지하면서 번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