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광종 영국 임페리얼대 교수(왼쪽)가 손상혁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오른쪽)과 30일 대구 달성군 DGIST 회의실에서 진행한 대담에서 컴퓨터 과학과 융합 교육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DGIST 제공
양광종 영국 임페리얼대 교수(왼쪽)가 손상혁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오른쪽)과 30일 대구 달성군 DGIST 회의실에서 진행한 대담에서 컴퓨터 과학과 융합 교육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DGIST 제공
손상혁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은 30일 대구 달성군 DGIST에서 열린 ‘제6회 종합 국제학술대회(DGIF)’에 참석한 양광종 영국 런던 임페리얼대 교수와 대담을 했다. 의료로봇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양 교수는 세계 로봇 학자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2016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사이언스 로보틱스’의 창간을 주도했다.

양 교수는 이날 4차 산업혁명 시대 로봇과 인공지능(AI)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두 사람은 “AI 기술은 저물지 않고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AI의 활용 분야를 발굴하는 융합적 사고와 창의력에서 성패가 갈릴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손상혁 총장=4차 산업혁명을 AI·로봇·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특정 기술 관점에서 접근하는 건 협소한 시각인 것 같다.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융합과 혁신을 바라봐야 한다. 한 예로 사람의 DNA를 마음대로 편집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인간의 생물학적 능력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앞으로 어쩌면 인류의 정의가 바뀌고 새로운 인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3차 산업혁명까지 인간이 기계를 통제했다면 강한 AI처럼 똑똑한 기계가 등장해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시대로 가고 있다.

▶양광종 교수=나라마다 4차 산업혁명을 지칭하는 말은 다르지만 기본 개념은 모두 비슷하다. 연구자 관점에서 보면 개인화·세계화·디지털화라는 세 가지 현상으로 요약된다. 기술 발달로 기존 환경이 해체되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산 방식과 공급망이 산업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디지털화는 이미 곳곳에서 혁신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병원에서 대동맥류 환자에게 시술하는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은 시뮬레이션 기술의 덕을 보고 있다. 생산 방식의 디지털화는 지리적 한계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손 총장=공감한다. 사이버 세계와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는 오랫동안 따로 놀았다. 이제는 두 세계가 강하게 연결돼 있다. 예전에는 사이버 공격을 받으면 파일을 지우고 정보를 빼가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지금의 공격은 물리 세계를 파괴한다. 이미 ‘스턱스넷’이란 해킹 프로그램이 이란의 원자력 실험시설을 무력화한 사례가 있다. 자율주행차도 사이버 세계와 현실이 강하게 연결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변화다.

혈액 속을 헤엄치며 병균을 제거하는 나노로봇.
혈액 속을 헤엄치며 병균을 제거하는 나노로봇.
▶양 교수=특히 로봇 기술이 가져올 변화는 크다. 의료로봇은 점점 더 작고 똑똑해지면서 많은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약처럼 삼키는 초소형 마이크로로봇과 나노로봇이 몸 안을 돌아다니며 병균과 직접 싸우는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할 것이다. 10년 내 옷처럼 편하게 입고 다니는 외골격로봇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 것이다.

▷손 총장=의료 분야에서 사이버물리시스템(CPS)의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이다. AI와 현실 세계가 결합하면서 내 유전자와 안 맞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조언하는 건강 관리 시스템도 머지않아 등장할 것이다.

▶양 교수=AI는 정말 봄이 온 것 같다. 1970~1980년대에도 주기적으로 AI 붐이 일다가 꺼지는 일이 반복됐다. 지난해 구글의 바둑 AI인 알파고가 인간 고수를 누른 일을 계기로 AI가 다시 활기를 띠며 봄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시작한 봄은 앞으로 쭉 이어질 것 같다. AI 시스템은 더 다양한 목적에 사용되고 포괄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이다. 컴퓨터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디지털 세상과 현실 세계를 연결해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갈 생각을 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인간의 창의력이다. 알파고와의 대국에 인간은 고작 25W(두뇌가 쓰는 전력량)만 썼다.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인간이 훨씬 우수하다는 점을 자주 잊어버린다.

▶손 총장=컴퓨터를 공부하는 학생에겐 ‘다방면에 관심을 두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컴퓨팅 과학은 컴퓨터 칩이나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언어에만 집중했다. 이제는 모든 분야에 컴퓨터 과학이 접목되기 때문에 다양한 바탕의 지식과 사고를 지녀야 한다. 많은 대학이 융복합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양 교수=기술 발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AI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점점 알기 어려워지면서 점차 블랙박스처럼 바뀌고 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설명 가능한 AI’가 주목받는 이유다. 전쟁에 참여하는 AI 무기처럼 금지가 필요한 AI도 있다고 본다. 연구자들은 파괴적인 기술을 개발하지만 그 파급 효과를 잘 모른다. 기술의 오사용까지 고려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손 총장=연구자로서도 규제의 필요성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 규제가 약하다고 하는 미국과 중국에서도 규제를 통해 유전자 가위나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있다. 사고가 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인간도 판단하기 어려운데 소프트웨어에 전적으로 맡기는 건 어렵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협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기술을 개발하려면 국가와 기업 간 협력이 점점 필수가 되고 있다. 하지만 ‘승자독식’ 체제가 굳어지면서 국가 간 또는 회사 간 협력을 막고 있다.

▶양 교수=한국은 멋진 TV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와 전자제품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로봇 분야 역시 톱 5에 든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영국은 연구개발(R&D) 대부분이 연구자에게 연구를 맡기는 상향식이다. 정부는 대신 의료, 수송, 생산, 무인화 시스템 등 영국이 잘하는 4개 분야와 이들 산업을 바닥에서 뒷받침하는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3~4개 분야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대구=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