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 김밝은(1964~)

걷고 또 걸어도 쨍쨍한 한낮들이 지루하게 흘러갔어
도대체 생각이 없는 것 같은 낮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지
오후 두시만 되면 내려앉는 눈꺼풀을 원망하며…
얼마 만이야 이런 시간
얼른 낮을 뒤집어 놓고 긴긴 밤과 마주해야지

부풀대로 부푼 밤의 몸을 오래도록 만질 수 있을 거라 상상해봐, 발가락 끝부터 짜릿해지지 않니?

낙타가 등을 일으켜 세우고 떠나갈 시간일랑 저만큼 밀어놓고
밤이 쏟아내는 표정들과 함께 하고 나면 아침,
손가락 사이에서 싱싱한 물고기들이 튀어 오를지도 몰라

시집 《술의 미학》(도서출판 지혜) 中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주당 노동시간이 가장 많은 그룹에 속한다고 한다. 일이 없어 한가한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직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일, 일, 일 속에 묻혀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타가 등에 짐을 가득 싣고 사막을 걸어가는 듯한 낮. 휴식이 있는 밤이 너무 그립다. ‘부풀 대로 부푼 밤’의 몸을 오래도록 만질 수 있는 즐거움에서 새로운 날을 꿈꾸는 재미가 오롯하다.

문효치 <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