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성 CEO에 기대한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업인은 조선 정조 때 인물인 김만덕으로 알려져 있다. 김만덕은 제주에서 객주를 운영하면서 제주도 물품과 육지 물품의 교역, 즉 일종의 국내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뤘다. 그보다 앞선 조선 인조 때 세자빈 강씨도 여성 기업인 범주에 넣을 만하다.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가 볼모로 중국 선양에 끌려가 있을 때 세자빈 강씨가 함께 끌려온 200여 명의 일행과 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는 조선에서 면포, 표범 가죽, 종이, 약재 등을 수입해 중국 현지에 팔았다. 세자빈 강씨는 한국 최초의 무역업 여성 최고경영자(CEO)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업인들이 무역업에 종사한 여인이었음은 우리가 수출로 경제 대국을 이룬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기업 경영이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성이 지닌 본성이 요즘 기업이 요구하는 경영 리더십의 요건과 더 부합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섬세하고 유연하며 감성적인 성향이 훨씬 강하다. 특히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의 경쟁력은 소프트 파워에 많이 의존한다. 직원의 창의력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리더는 경청해야 한다. 아랫사람이 스스로 판단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이런 리더십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뛰어나다. 예를 들어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주자인 미국 소셜미디어 업체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와 동영상 공유업체 유튜브의 수전 워치츠키 CEO는 대표적인 여성 경영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가 ‘리먼시스터스’였다면 위기는 없었을 것이란 유머도 있다. 남성의 무모한 공격적 경영이 결국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한국에서 여성 기업인의 역할은 능력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는다. 세계를 제패한 여자 골프, 여자 양궁, 여자 쇼트트랙 등에 비교하면 기업계의 여성 파워는 왜소해 보인다. 국내외 무역 현장에서 당찬 여성 CEO를 많이 보지만 무역협회 회원사 가운데 여성 CEO는 5% 정도에 불과하다. 오늘(12월5일)은 무역의 날이다. 올해는 2014년 무역 1조달러에서 추락한 이후 3년 만에 다시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는 뜻깊은 해다. 이제 우리는 무역 2조달러, 아니 5조달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선두에 ‘제2의 김만덕’ ‘제2의 세자빈 강씨’ 같은 여성 CEO들이 서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jkkim8798@kit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