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1992년 12월3일이었다. 영국 이동통신회사 보다폰의 한 사무실에서 22세 청년 닐 팹워스(Neil Papworth)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세마그룹 소속으로 모바일 메시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외부에 있는 상사 리처드 자비스에게 시험 메시지를 보내달라는 회사의 요청을 받은 그는 컴퓨터에서 짧은 문자 하나를 보냈다.

그 메시지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였다. 지금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짧은 문자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세계 최초의 문자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이는 25년 동안 세상을 바꾼 혁명의 도구가 됐다. 세계 스마트폰 이용자의 97%가 이를 사용하고 있다.

당시 문자를 보낸 팹워스는 “그게 그렇게 큰 사건이 될 거라곤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자를 받은 자비스도 “받기는 했지만 회신을 보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땐 휴대폰에 수신 기능만 있고 송신 기능이 없었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문자 전송 휴대전화를 상용화한 것은 1년 뒤인 1993년이었다.

문자 메시지란 개념은 이보다 훨씬 앞선 1984년에 처음 제시됐다. 핀란드 엔지니어인 마티 마코넨(Matti Makkonen)이 한 텔레커뮤니케이션 국제회의에서 SMS(short message service, 문자 메시지) 개념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그는 특허 대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초기에는 문자 메시지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문자 입력 방식이 복잡했고, 이동통신사의 시스템도 뒷받침되지 않았다. 툭하면 문자가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모두가 귀찮아하며 쑥덕거리던 이 기술은 곧 지구촌의 소통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트위터가 로마자 140자로 트윗 크기를 제한한 것도 SMS의 영향이 컸다. 초기 SMS의 글자 수 제한은 트위터와 비슷한 로마자 160자였다. 최근에야 한·중·일을 제외한 세계 주요국의 트윗 글자 수 한도를 140자에서 280자로 늘렸다.

한국에서 문자 메시지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97년부터다. 1998년 한글 입출력 단말기가 양산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각 통신회사의 시스템 차이와 복잡한 요금제 때문에 부가 기능 정도로 쓰였고, 무료 서비스인 카카오톡이 등장하자 수요가 급격히 떨어졌다.

미국에서도 문자 메시지는 페이스북 메신저와 애플 i메신저, 구글 행아웃 등에 밀려 맥을 못 추고 있다. 개발자인 팹워스의 말처럼 휴대전화를 이용한 텍스트 문자 주고받기는 ‘과거의 영광’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모든 소셜미디어의 원형이 됐으니 ‘처음엔 미약하나 나중엔 창대한’ 혁신 기술의 주역임에 틀림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