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문 회장(왼쪽), 이병철 부회장
권성문 회장(왼쪽), 이병철 부회장
4일 서울 강남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KTB투자증권의 긴급 이사회에 증권업계 관심이 집중됐다. 회사 측에서 공식적으로 외부에 밝힌 이날 이사회의 개최 목적은 ‘단순 경영현황 점검’이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선 이날 열린 이사회를 계기로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과 이병철 부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분쟁의 서막

작년 3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엔 KTB투자증권 주식 취득에 대한 공시가 올라왔다. 당시 이병철 다올인베스트먼트 사장이 이 회사 지분 5.81%를 장내에서 매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취득 목적은 ‘우호적인 경영참여’였다. KTB투자증권은 이후 이 부회장과 최대주주인 권 회장의 ‘공동경영체제’를 선언했다.

권 회장은 1990년대 ‘벤처투자 신화’로 불린 인물이다. 2008년 증권업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서 권 회장의 ‘성적’은 초라했다. KTB투자증권은 2011년에 창사 후 처음으로 순이익을 냈다. 하지만 이듬해 순이익이 절반으로 줄었고 2013~2014년 2년간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경영권 분쟁설' KTB투자증권에 무슨 일이
이에 따라 권 회장은 ‘부동산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이 부회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KTB투자증권을 대체투자 전문 증권사로 탈바꿈시키려는 복안이었다. 이 부회장은 권 회장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권 회장이 보유한 지분 21.96%만큼 장내에서 지분을 인수할 수 있고, 권 회장은 시간을 두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영입 이후 KTB투자증권은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하자마자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KTB투자증권 고문영입설, KTB PE 인수설 등이 돌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경영하던 다올신탁 등을 2010년 김 전 회장이 이끌던 하나금융그룹에 매각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김 전 회장 간 각별한 인연 때문에 KTB투자증권 경영에 김 전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소문이 많았다”며 “권 회장은 이 같은 소문에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 문제로 시작된 불화

공동경영은 지난해 8월 인사 문제로 급격히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게 증권업계의 중론이다. 이 부회장은 7월 공식 취임한 이후 각종 쇄신인사를 단행하면서 KTB투자증권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 측 제안으로 영입된 전 경영관리본부장이 권 회장 지시로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부회장이 영입한 인사가 권 회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권 회장이 보직변경 인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과 이 부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경영권을 둘러싼 기싸움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약속과 달리 권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뗄 의사가 없는 것으로 인식한 이 부회장이 이에 항의하면서 두 사람 관계가 급격히 틀어졌다는 게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경영권 분쟁설은 8월 권 회장의 개인회사 직원 폭행 문제로 증권가에 다시 회자됐다. 직원 폭행에 이어 곧바로 권 회장은 횡령·배임 혐의로 금감원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지난달엔 검찰이 권 회장의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까지 했다.

권 회장도 자신에게 금융당국과 검찰이 칼을 겨눈 게 “모두 이 부회장이 의도한 것 아니냐”고 측근에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최근 16.39%까지 늘었다. 권 회장과의 지분율 차이가 5%포인트 정도에 불과하다.

◆긴급 이사회의 진짜 목적은?

KTB투자증권 사외이사인 임주재 김앤장 고문은 지난 1일 KTB투자증권 이사진에 긴급 이사회를 제안했다. KTB투자증권 관계자는 “긴급 이사회에서 특별한 안건 결의는 없었다”며 “최석종 사장이 이사회에 경영 현황을 보고하고 원만히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선 이번 이사회가 이 부회장을 해임하기 위한 권 회장의 반격이란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사회의 균형추가 최근 권 회장 측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KTB투자증권 이사진은 권 회장과 이 부회장, 최 사장 등 3인의 공동대표와 사외이사인 김용호 김앤장 변호사, 임 고문, 이훈규 법무법인 원 고문, 정기승 전 현대증권 감사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임 고문은 중립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권 회장이 김앤장을 법률자문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 임 고문과 권 회장이 연세대 동문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권 회장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태호/홍윤정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