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까지 서울 논현동 에이루트 아트플랫폼에서 열리는 윤씨의 개인전은 지난 20년간 한국 하이퍼리얼리즘 예술에 빠진 전업 작가의 열정과 끈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20여 점의 사과 그림은 올해 경기 고양시 일산작업실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매달리며 일군 근작이다.
5일 전시장에서 만난 윤씨는 “우리의 삶에 슬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을 정교한 구도로 담아냈다”며 “노래로 치면 조용필의 ‘바운스’ 같은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미대를 졸업하고 2007년 ‘화단의 영스타’로 떠오른 윤씨는 전시회 때마다 컬렉터가 몰려 작품이 ‘완판’되는 몇 안 되는 ‘행복한’ 작가다. 일반 그림보다 수십 배 노동집약적 작업인 데다 현대인의 모방 본능을 사과에 표현하는 독창성 때문에 국내외 아트페어에 출품하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작품 주문이 밀려들어 내년 말까지 예약이 끝난 상태다. 2008년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는 3.5m 크기의 작품 ‘가을 향기’가 추정가보다 네 배 높은 48만7500홍콩달러(약 6800만원)에 낙찰됐다.
1970년대 말 미국 하이퍼리얼리즘을 흡수해 독창적인 극사실 화법의 경지를 이룬 그는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자란 기억과 농사의 소중함에서 예술의 원천을 뽑아낸다”고 말했다.
“벼농사를 하는 부모님의 소중한 땀방울을 보며 자랐어요. 곡식은 땅이란 캔버스에서 쉬지 않고 노동을 해야 잘 영글듯이 예술 역시 ‘영혼의 지문 같은 손맛’으로 쉼없이 노력해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윤씨의 작품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려져 대상을 ‘새롭게 보기’를 가능하게 한다. 나무판 위에 삼합지 이상의 두꺼운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유화물감으로 두세 차례 덧칠한다. 작업실에서 사과를 깎기도 하고 궤짝을 옆으로 쏟기도 하면서 다양한 구도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작업실에서 편하게 있는 것처럼 보여도 작품을 예정된 시간에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채 산다”고 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세밀하게, 단계적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품과 시간이 많이 든다. 100호(130×162㎝) 크기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꼬박 보름이 걸린다.
윤씨는 단순히 사물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사각 캔버스라는 ‘기호’를 통해 현실을 반영하는 ‘환영의 기술자’를 자처한다. 그의 작품엔 한국경제신문이 빠지지 않는다. 사과를 감싸고 있는 신문지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의 흐름이 오버랩되면서 정보의 신성함을 전하기 때문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