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3당의 예산안 합의가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내년 예산안의 손익계산을 떠나 합의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적 역학관계가 여야 지도부에 새로운 고민을 안기고 있어서다. 당장 정책연대를 꾀하고 있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5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등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앞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5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등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앞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 바른정당, 통합 논의 어디로?

바른정당은 5일 예산안 합의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국민의당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야당이 정부를 제대로 견제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잘못된 합의에 이르렀다”면서 “특히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합의안에 서명한 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책연대 파트너인 국민의당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바른정당은 공무원 증원과 일자리안정자금에 반대해왔다. 내년 예산안에 대해 “우리가 주도해서 적절한 합의안을 도출해냈다”고 자평한 국민의당으로선 당혹스러운 지적이다. 제3당으로 ‘문제 해결 정당’을 표방하며 중재자 역할을 중시하는 국민의당과 비교섭단체로 전락한 바른정당의 이해가 처음으로 충돌한 것이다.

국민의당은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캐스팅보트의 위력을 드러내며 한국고속철도(KTX) 무안공항 경유 등 굵직한 호남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까지 따내는 등 철저하게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정책연대를 거쳐 선거연대, 통합까지 염두에 둔 안철수 대표로서는 유 대표의 이런 지적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책연대를 시작하기도 전에 양당이 불협화음을 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바른정당도 이번 예산안 협상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등 비교섭단체의 설움을 체감한 만큼 국민의당과 연대의 끈을 놓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바른정당과 연대 필요성에 공감하는 한 수도권 의원은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달리 원내교섭단체 지위가 있다”면서 “생각이 비슷하다고 해도, 최종 선택지는 더 책임 있게 해야 하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쟁점 법안 입법구도 변화 오나

자유한국당은 이번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한국당 패싱’ 논란에 휩싸이면서 오는 12일 선출되는 원내지도부가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지금과 같은 3당 구조에서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보조를 맞출 경우 예산안뿐 아니라 향후 쟁점 법안을 저지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유기준 의원은 이날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과 함께 수정안을 마련해 야당이 원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어야 했다”며 이번 예산안 협상의 전략 부재를 지적했다. 일각에선 향후 여야 협상에서 ‘패싱 상수’로 전락할 수 있다며 전략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정시한을 넘겨 가까스로 합의를 이끌어낸 민주당은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소수 여당의 한계를 또 한 번 절감했다. 매번 쟁점 법안을 통과시킬 때마다 통과 여부를 예단하기 어려운 살얼음판 형국이다. 이번엔 국민의당에 호남 예산과 선거구제 개편 적극 협조 등의 당근을 제시해 고비를 넘겼지만, 향후 쟁점 법안 처리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국민의당이 안철수계를 중심으로 정부·여당과의 대립각을 통해 선명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는 게 여당의 고민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모든 사안에 반대하는 한국당을 상수로 두고 국민의당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상황이 소수 여당으로서 민주당이 처한 정치 현실”이라며 “국민의당 내분 등 향후 정치 변수가 많아 고민”이라고 전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